[단독]월세방 살며 학교폭력 고통… 한국이 싫어진 ‘그림자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7일 03시 00분


법무부, 미등록 이주아동 첫 전수조사… 최대 1만3239명 추정

‘월세방을 전전하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언어폭력에 시달리며 한국 생활에 자긍심이 없는 아이.’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강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 ‘미등록(불법체류) 이주아동’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올해 3∼10월 전국 불법체류 이주아동의 실태를 조사한 법무부의 A4용지 559쪽 보고서를 동아일보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그림자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불법체류 이주아동의 인권 문제 등을 지적하자 법무부는 첫 실태조사를 벌였다.

○ “다시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다”

법무부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동 500명(불법체류 171명, 합법체류 32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불법체류 이주아동 가정은 합법체류 가정에 비해 △취업·단기비자로 입국해 △엄마 연령대가 더 높으며 △이혼가정 비율이 더 높고 △부모의 학력은 낮으며 △맞벌이 비율이 높았다.

불법체류 이주아동 대다수(82.4%)가 월세주택에 거주했다. 합법체류 가정의 월세주택 거주 비율(4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아이들은 심층 인터뷰에서 주로 “월세가 비싸고 주변 환경이 열악하다”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고 답했다.

불법체류 이주아동 중에서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심층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생활하기 힘들어서 아침 일찍부터 부모님이 돈을 벌어야 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다녀야 할 곳(학교·학원)이 많지 않아서”라고 언급했다.

아이들은 “아시아계 외국인은 무조건 낮은 신분이라는 편견” “심한 인종 차별” “한국어 교육을 받을 기관이 주위에 많지 않음” 등을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또 “차별적 대우를 피해서 다문화 자녀들과 따로 수업 받는 것”을 희망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불법체류 이주아동은 전체 응답자의 46.1%로 절반에 가까웠다. 학교폭력의 유형은 언어폭력, 따돌림, 신체적 폭력 순이었다.

불법체류 이주아동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현저히 낮았다. 아이들의 3분의 2 정도가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다”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살기 싫다”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차별받았다”고 대답했다. “한국인들처럼 군대에 입대해 한국을 지키고 싶다”는 답변도 80.1%가 공감하지 않았다. 반면 합법체류 이주아동은 불법체류 이주아동과는 정반대로 한국에 대한 자긍심 등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법무부 강성환 외국인정책과장은 “불법체류 이주아동은 국가의식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으로부터의 이탈 욕구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그림자 아이들’ 최대 1만3239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있는 불법체류 이주아동의 추정 규모는 최소 5295명∼최대 1만3239명이다. 성인 불법체류자 수에 인구 1000명당 출산율을 환산해서 불법체류 이주아동 수를 추정한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2만 명보다는 다소 적지만 과학적인 근거로 불법체류 이주아동 수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일반 국민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77명은 ‘정부가 한국 아동처럼 외국인 출생등록과 출생증명서를 발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은 ‘불법체류’ 딱지가 붙지 않도록 시스템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불법체류 이주아동과 본인 자녀의 동반 교육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법무부는 국내 체류 아동 지원을 위한 이민자 기금 마련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이주아동을 위한 세금 부담 의향에 과반수가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반면에 기금 마련에는 긍정적 응답이 과반수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림자 아이들 첫 실태조사 결과를 향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유념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황형준 기자
#미등록 이주아동 첫 전수조사#최대 1만3239명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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