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망명한 2016년 쿠데타 배후
터키 외교 “트럼프, G20회의서 에르도안에 송환추진 밝혀”
카슈끄지 사건 이후 美변화 감지… 터키-사우디 사이 정치적 계산 고심
터키 정부가 2016년 7월 발생한 ‘실패한 쿠데타’의 배후로 알려진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77·사진)과 귈레니스트(귈렌 추종세력)들을 터키 본국으로 송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16일 밝혔다. 귈렌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인물로, 1999년 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건너갔다가 지금까지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16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귈렌의 송환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터키의 ‘귈렌 송환 요청’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왔다. 그러나 지난달 미 NBC 뉴스가 익명의 소식통 4명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에 귈렌 송환 요청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하는 등 최근 미국이 귈렌 송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자말 카슈끄지 사건’이 트럼프 행정부 태도 변화의 촉매제가 됐다. 터키 정부는 10월 초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지목하고 사우디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사우디와 130조 원이 넘는 무기계약을 추진 중이고, 함께 반(反)이란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의 고립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적인 귈렌을 넘겨줌으로써 터키, 사우디, 미국 모두 실익을 챙기는 정치적 계산이 가능했던 상황인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귈렌 송환을 두고 어떠한 고려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귈렌은 21세기 이슬람 사상가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힌다. 이슬람 전통에서 ‘자유와 민주’라는 서구적 가치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터키어로 봉사를 뜻하는 ‘히즈메트(Hizmet)’운동을 통해 이슬람의 현대적 가치를 국제 사회에 알려왔다. 세계 여러 곳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은 기부금으로 학교와 비영리 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귈렌은 1990년대 정치적 동지 관계로 시작했다. 그러나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대 귈렌’의 세력 싸움이 시작됐고, 이런 와중에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 직후 한 여론조사에서 귈렌은 압도적으로 ‘쿠데타의 배후(64.4%)’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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