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1000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서부 히말라야 라다크 이야기다. 오래된 것에 저항하는 개발론자들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앞세운다. 새로운 것만이 미래라고 주장한다.
중국 상하이 라오창팡(老場坊)은 1933년 지어진 도축장이다. 도심 한복판 도축장이 외곽으로 이전하자 관(官)은 이 건물을 허물지 않고 문화예술이라는 콘텐츠를 씌워 변신시켰다. 오래된 방직공장인 모간산루 50호(M50) 역시 건물을 온전히 유지한 채 창작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좁은 주택가인 톈즈팡(田子坊)도 문화와 예술, 카페거리로 전환됐다. 푸둥(浦東)을 세계 최대 금융도시로 탈바꿈시키는 한편으로는 와이탄 뒷골목의 오래된 건물과 골목은 문화와 관광, 쇼핑, 먹거리 명소로 변화시켜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세계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다. 미국 뉴욕 맨해튼 15∼16번가 공장건물인 첼시마켓은 세계적인 먹거리 타운이 됐고,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는 쇼핑 천국이 됐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동남아 국가의 도시들에서도 관광객들에게 가장 매력 있는 방문지는 바로 시장(市場)이다.
모르는 국가나 낯선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왜 시장에 매료되는 걸까. 그 나라, 그 도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가장 쉽고 빠르게 방문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사고파는 기능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 이유다.
100년 역사를 지닌 대전 유성오일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곳에 초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지으려는 재개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시장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반대하지만, 시장 오피스텔에 밀집해 사는 사람들이 재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다.
100년 역사를 지닌 시장의 존폐 기로에서 대전시와 유성구청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17일 기자에게 “지킬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지키고 싶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론 ‘법으론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얼마 전 대전을 다녀간 서울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대전에 가서 장태산, 대청호, 한밭수목원, 국립중앙과학관 등을 다 봤지만 유성오일장이 그래도 가장 머릿속에 남는다.”
‘함께한 100년, 함께할 100년’인 ‘오래된 미래’ 유성오일장은 대전이 지켜야 할 과거이자 미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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