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말을 하는데 밥은 기자보다 빨리 먹었다. 대개 숟가락질할 시간이 없어 남기거나 이야기를 마친 뒤 식사하기 마련인데 그는 달랐다. 하긴 술자리에선 막걸리 몇 통을 순식간에 비우는 것도 봤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얘기다. 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고 했었다. 알아주는 대식가인 손 대표가 곡기를 끊을 정도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손 대표가 열흘 만인 15일 단식을 풀 수 있었던 건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컸다. 14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의 선거제 논의를 존중하겠다고 했고, 이걸 전달받은 손 대표도 선거제 개편의 모멘텀이 생겼다며 단식 중단의 명분을 찾은 것이다. 아무리 요새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대통령이 나서야 정치적 실타래가 풀린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 대통령이 종종 저녁에 외부 인사 없이 혼밥 또는 혼술을 한다는 이야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도가 대작(對酌)하러 종종 관저에 들른다고 한다. 만나자는 사람이 없어서겠나.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권 관계자는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하면서 밀린 보고서를 읽거나 참모들에게 전화로 지시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혼밥, 혼술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중요한 건 왜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느냐일 것이다. 아마 손 대표처럼 대통령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회는 별로 없다는 방증 아닐까 싶다. 야권, 그중에서도 자유한국당 인사들이 문 대통령과 비공식적으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했다. 하긴 문 대통령도 사람인데 맨날 싫은 소리만 하고 지지층 중 일부는 자신의 탄핵까지 거론하는 정파 인사들을 굳이 만나야 하나 싶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직 대통령도 비슷했다. 주로 관저에서 지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차치하더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주변에 “야당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운 게 현재 정치 지형. 이 구도는 2020년 총선 전까지는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최소한 그때까지는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직 맡으면 정무수석에게 난 들려 보내는 ‘영혼 없는’ 소통이나 얼굴 잊을 때쯤 모이는 여야정 협의체 말고, 대통령이 불쑥 저녁 번개를 제안하는 식의 ‘정치적 소통’ 말이다.
처음엔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법조인 출신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야당 인사들을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엔 먼저 연락했다. 2014년 11월 중간선거 패배 후 기자들이 오바마에게 정국 수습책을 묻자 “(야당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에게 버번위스키 한잔하자고 해야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썩 내키지 않아 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버번위스키로 유명한 켄터키주가 지역구였던 매코널은 영화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베이더’가 별명일 정도로 워싱턴 바닥에서도 유명한 냉혈한. 하지만 둘은 나중에 백악관에서 그 위스키를 마셨고 종종 샌드위치 점심을 했다. 설득이 통했는지, 오바마 임기 중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를 폐기하지 못했다.
아무리 정치가 팍팍해졌다 해도 대통령이 양주도 아닌 막걸리에 저녁 하자는 데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다. 식사 한 끼 했다고 모든 일이 풀리지는 않겠지만, 이런 소통 노력 없이 큰일하기도 역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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