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딸을 고대했는데 아들”이라며 서운함을 비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뜻하는 출생성비는 1990년 116.5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2000년 110.1명을 찍고는 줄곧 떨어져 지난해 106.3명이었다. 뿌리 깊던 남아선호사상이 이처럼 빠르게 바뀔 줄이야. 아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시대가 끝나서겠지만 그래도 부모가 딸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는다면 낳기를 주저할 것이다. 여아 선호에는 딸이 엄마보다는 차별받지 않을 것이고, 아들만큼 행복할 것이란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어긋나는 성평등 지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하위권을 맴도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별격차지수(GGI)다. 올해 149개국 중 115위. 1에 가까울수록 남녀 간 사회·경제적 격차가 적은데 우리나라는 0.657로 중국(0.673·103위), 일본(0.662·110위)보다 낮다. 뒤로는 아프리카, 아랍 국가들뿐이다. 석 달 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성불평등지수(GII) 10위와도 격차가 크다.
▷두 지수 간 차이는 구성하는 지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성불평등지수는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모성 사망비율, 중고교 진학률 등에 주목했고, 성별격차지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전제로 남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여성 고위직 비율, 남녀 임금 격차 등을 살핀 선진국형 지수다. 우리나라 성평등 상황은 개발도상국 단계를 졸업한 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고, 형식적인 평등은 이뤘지만 실질적인 평등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면 정확할 것 같다.
▷일상에서 이런 괴리를 겪는 여성들이 더는 못 참고 올해 미투(#MeToo) 운동을 분출시켰다. 미투 운동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모른 척했던 성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깨우면서 우리 사회를 한발 더 전진시켰다. 이처럼 실질적인 평등으로 나아갈 시기에 남성혐오, 여성혐오 같은 성대결로 사회적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안타깝다. 남녀가 번지수를 잘못 알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어서다. 혐오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희생양을 찾을 때 널리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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