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가 1년 넘게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는 것을 듣고도 이를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은 그런 이야기를 외부에 알리면 오토를 풀어주지 않겠다고… 가족 모두가 사실상 인질이 되어 침묵으로 견뎌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 22호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6일 만에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의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는 아들의 상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몇 차례나 입술을 깨물었다.
이날 재판은 웜비어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11억 달러(약 1조2400억 원)의 배상금 청구소송의 증거청문 심리로 진행됐다. 70명 가까운 웜비어 가족과 친구 등이 법정을 채운 가운데 시작된 재판에서 가족들이 차례로 증인석에 앉았다.
웜비어 씨는 “오토가 억류된 뒤 북한이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하고 핵 공격 위협까지 하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져 갔다”며 “아들과 직접 연락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적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호텔에서 선전 전단을 훔쳤다는) 오토의 자백은 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허위 자백”이라며 “북한은 내 아들을 감정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온 아들은 내가 아는 오토가 아닌, 영혼 없는 괴물(monster)이 돼 있었다”며 “초점 없는 눈을 뜬 채 경련을 일으키는 아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흐느꼈다. 북한에서 오토를 데리고 나온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비행기에서 먼저 내리면서 울고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이때 나왔다.
오토는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도 고열에 시달렸고, 상태가 악화되면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병실에 누워 있는 깡마른 오토의 두 다리 사진 등이 법정 스크린에 공개되자 방청석에서는 탄식과 한숨,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웜비어 씨 부부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이제는 더 이상 북한이 두렵지 않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여기에 서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들은 “북한은 악마”라면서 “정의를 찾기 위해, 그리고 이런 짓을 한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재판장인 베릴 하월 판사를 향해 “북한은 외국인을 감금, 억류하고 신문 과정에서 고문하는 인권유린으로 제재를 받아온 국가”라며 “22세의 밝고 건강한 청년을 18개월간 불법 억류하면서 심각한 뇌손상을 입혀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역설했다. 또 오토의 고교 졸업연설 동영상과 가족사진들을 보여주며 그런 그를 무너뜨린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다. 변호인단은 앞서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도 “북한이 오토의 상태와 사인에 대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했고, 그를 처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북한 측 관계자는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아 피고석이 텅 빈 채 재판이 진행됐다. 심리는 이날로 사실상 종결됐다. 법원은 조만간 판결 날짜를 밝힐 예정이다.
뒤늦게 법정에서 재점화된 오토 웜비어 사건은 북한을 향해 또 다른 인권압박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인권 토론회에서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대북 협상에 인권 주제를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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