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젊은이. 언제든 어디서든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게. 이 노래가 정의의 힘을 발휘해 줄 걸세.”
199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한국 선수 최민철. 자기만의 야구 ‘기준계’가 조금씩 고장 나고 있단 걸 체감할 즈음 ‘지금이 한국에 돌아가야 할 때’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의 에이전트는 ‘외환위기로 분위기가 안 좋다’며 ‘한국은 아직 당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국내 복귀를 만류한다. 답답한 마음에 미 대륙의 동과 서를 잇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그는 간이음식점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질 것 같은 기분엔 이 노래를 부르라’는 얘길 듣는다. “지는 게 꼭 나쁘다는 뜻이 아니네. 때로는 질 때도 있지. 져야 할 때도 있고. 문제는 지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네.”
수십 년이 지난 뒤 이제는 ‘골반과 허벅지가 이어지는 관절이 보일 정도로 말랐고, 서너 달 감기를 앓은 사람같이 쉰 목소리’의 간암 환자가 된 그는 병원으로 찾아온 자서전 전문 출판사 편집인에게 대답 대신 ‘빰빰빰 빠 빰빠빠…’라며 노래를 부른다. 미국 리그에 입성했지만 아내와 딸을 한국으로 떠나보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 일, 구단과 계약 만료 이후 에이전시의 뜻에 따라 또 다른 미국 구단으로 이적한 일, 은퇴 이후 늙고 병든 일, 스스로 자서전을 만드는 일 중 어느 것이 진짜 ‘패배’인지를 묻는 듯하다.
이 소설집엔 표제작 ‘질 것 같은…’ 외에도 한때 선수를 꿈꾸던 인터넷 프리미어리그 중계업체 팀장(레츠 고, 가자!), 1년 만에 좋아하던 밴드의 콘서트에서 전 여자친구와 재회한 남자(오! 롤라) 등 ‘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삶이라는 애매하고 불분명한 질문을 던지며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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