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공지능 해저기지 남중국海에 세우는 까닭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12월 23일 08시 21분


중국의 심해 유인잠수정 자오룽호. [차이나 데일리]
중국의 심해 유인잠수정 자오룽호. [차이나 데일리]

‘해저 2만 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 발간한 책으로, 잠수함 노틸러스호와 네모 선장이 바닷속을 누비며 겪는 각종 모험을 다룬 공상과학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네모 선장의 소원은 해저도시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책 발간 후 148년이 지난 지금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서 해저의 99%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해저는 인간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닐라 해구 5000m 해저에 1800억 원 들여

중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미지의 세계인 남중국해 깊은 바다에 과학연구와 군사임무를 수행할 인공지능(AI) 해저 무인기지를 구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과학원은 12월부터 수심 6000~1만1000m의 초(超)심해에 무인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입안했다고 한다. 중국 과학원이 이런 계획을 추진하게 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4월 하이난성 싼야시 심해연구소를 방문해 “과거 누구도 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라”며 “심해에는 어떤 길도 없으니 우리가 길을 열어야 한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과학원은 이른바 ‘하데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청사진 마련에 들어갔다. 하데스(Hades)는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을 관장하고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神)을 말한다.

해저 무인기지는 로봇 잠수정이 출동해 해양생물 탐사, 광물자원 채취 등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자체 연구실에서 분석한 후 그 결과를 지상으로 보고하는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 기지는 선박이나 해상 플랫폼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전력과 통신 등을 공급받지만, 강력한 AI 두뇌와 센서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중국 과학원은 해저 무인기지 후보지로 ‘마닐라 해구(Manila Trench)’를 검토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수심 5000m가 넘는 곳은 마닐라 해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마닐라 해구의 최저 수심은 5400m이다. 얀핀 중국 과학원 연구원은 “AI 해저기지는 바다가 충분히 깊으면서도 화산 폭발 등의 위험이 적은 곳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과학원은 해저기지 건설비로 11억 위안(약 18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이 구이저우성 첸난주 핑탕현 산림지대에 세운 지름 500m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톈옌’(天眼·하늘의 눈) 건설비의 1.5배에 달한다.

중국이 해저 탐사를 위해 무인잠수정 하이룽 11000호를 잠수시키고 있다. [중국 과학원]
중국이 해저 탐사를 위해 무인잠수정 하이룽 11000호를 잠수시키고 있다. [중국 과학원]
하지만 중국의 해저기지 건설은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남중국해는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영유권과 자원 개발권, 어업권 등을 놓고 끊임없이 분쟁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닐라 해구는 중국과 필리핀의 분쟁지역인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과 가깝다. 스카버러섬은 필리핀 루손섬으로부터 서쪽으로 230km, 중국 본토로부터 동쪽으로 1200km 떨어져 있다. 중국은 원나라 때 작성된 지도에 이 섬이 자국 영토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필리핀은 이 섬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2012년 스카버러섬을 강제로 점거했고 인근 지역에 인공섬 7개를 건설했다. 게다가 미국은 인공섬들을 앞세워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여왔다. 중국이 이곳에 군사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는 해저기지를 건설하면 영유권 분쟁이 더욱 가열될 것이 분명하다.

또 다른 문제는 엄청난 비용과 기술력이다. 해저기지는 높은 수압, 부식, 해저 화산, 지진 등 극한의 심해 환경을 견뎌내야 하는 만큼, 건설비가 중국의 추산보다 훨씬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해저기지는 우주정거장과 마찬가지로 도킹 플랫폼이 필요한데, 과학자들이 먼저 심해의 수압을 견뎌낼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해야 하고,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중국 한 과학자는 “해저기지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심해용 잠수정 개발의 선두주자

중국의 무인잠수정 첸룽 3호. [웨이보]
중국의 무인잠수정 첸룽 3호. [웨이보]
그럼에도 중국이 해저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은 무엇보다 해저기지가 미국 잠수함과 군함 등의 동태를 감시하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해양패권을 놓고 미국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남중국해를 내해화(內海化)하는 포석이 될 수 있어서다. 즉 인공섬들과 마찬가지로 해저기지가 있는 남중국해를 중국의 바다라고 주장할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중국 과학기술부는 남중국해의 수심 3000m 해저에 유인기지인 룽궁(龍宮)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50명이 최대 2개월간 머물 수 있는 가로 22m, 세로 7m, 높이 8m, 무게 250t인 기지 건설을 목표로 유인잠수정 자오룽(蛟龍)호를 이용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해저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중국은 심해용 잠수정 개발의 선두주자다. 길이 8.3m로 3명이 탑승해 최장 9시간까지 잠수가 가능한 자오룽호는 2012년 서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서 해저 7020m까지 잠수해 전 세계 유인잠수정 가운데 가장 깊은 곳을 탐사한 기록을 세웠다. 중국은 또 무인잠수정으로도 일본과 미국에 이어 1만m 이상을 탐사한 세 번째 국가다. 심해 무인잠수정 하이더우(海斗)호는 2016년 해저 1만767m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중국은 또 AI를 이용한 군사용 무인잠수정도 적극 개발 중이다. 중국이 해저기지를 건설하는 첫 국가가 될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9호에 실렸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