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을 청소하다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해 이맘때 발표한 ‘2018년 세계 전망’의 기사 지면을 발견했다. 그때 읽고 책상 한구석에 보관해뒀던 것이다. FT는 미중 무역전쟁 발발과 미국 민주당의 하원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준비되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 등은 빗나갔다.
맞히고 못 맞히고를 떠나 다음 해의 관전 포인트를 짚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내년에도 국제뉴스 지면을 도배할 것이 확실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조망 프레임’은 다양하다. 기자는 주연이 아님에도 백악관을 흔들고 트럼프의 운명을 가를 만한 영향력을 가진 조연들에게 주목한다. 그들을 각각의 관전 포인트와 함께 소개한다.
①트럼프 괴롭힐 케이식의 ‘무소속’ 바람은 불까?
“대선에서 제3후보가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자문 중이다. 지금은 격변의 시대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인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지난달 말 ABC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차기 대선 무소속 출마를 숙고 중이라고 공개한 것이다. 내년 초 주지사 임기가 종료되는 케이식은 2016년 대선의 공화당 경선에서 홈그라운드이자 ‘러스트벨트’의 핵심인 오하이오주에서 트럼프를 이겼다.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에서도 선전했다.
‘2020 케이식’에게 돈을 걸 도박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대선 국면은 출렁이게 된다. 러스트벨트의 트럼프 표를 지역의 터줏대감인 그가 갉아먹으면 민주당이 쏠쏠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식이 중도 민주당원의 표를 가져가지 말란 법은 없지만 친정 공화당이 더 긴장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케이식의 내년 행보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②트럼프 재선은 80대 연방대법관들의 건강에 달렸다?
미국 진보 진영은 올 연말 또다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표적인 진보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5)가 11월 갈비뼈 골절상을 입은 데 이어 이달 21일 폐암 수술을 받은 것이다. 병원 측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밝혔으나 암 투병 중인 그녀를 지켜보는 진보 측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연방대법원 이념 지형이 ‘보수 5 대 진보 4’로 기운 상황에서 그녀의 은퇴는 치명타다. 또 다른 진보 대법관인 스티븐 브레이어 역시 올해 80세 생일을 맞았다. 위기를 자초하며 수렁으로 빠져드는 트럼프에게 보수 대법관의 추가 임명만큼 효과가 보증된 ‘반전 카드’는 없다.
민주당은 ‘일단 2019년만 넘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다. 2020년에는 은퇴자가 생기더라도 “대선이 열리는 해엔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할 수 없다”고 버티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공화당이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을 저지했을 때 사용한 논리다.
③자유 찾은 ‘백악관 어른들’ 입에 주목하라
“체계가 잡힌 엑손모빌에서 일하다가 글 읽는 걸 싫어하고 브리핑도 안 보는 대통령과 함께 일하려다 보니…. ‘대통령님이 펼치려는 정책은 위법입니다’라고도 말하곤 했습니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이달 6일 칩거를 끝내고 공개석상에 나서 이같이 말했다. 행정부에서 일했던 핵심 인사가 자신이 모셨던, 그리고 여전히 현직에 있는 대통령을 향해 이 정도 수위로 공개 비판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틸러슨과 허버트 맥매스터(전 국가안보보좌관), 그리고 최근의 존 켈리(전 백악관 비서실장)와 제임스 매티스(전 국방장관)까지. 2019년은 이들 ‘백악관 어른들’이 전원 트럼프 행정부를 이탈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올 한 해를 시끄럽게 한 트럼프 비판 저서 ‘화염과 분노’와 ‘공포’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한 폭로였다. 이제 그 익명의 취재원들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틸러슨처럼 잠깐의 휴식기를 거친 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맞춰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면 2019년엔 가공할 만한 공개 증언이 쏟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케이식, 긴즈버그에서 틸러슨까지. 이 ‘조연’들의 이름을 간간이 뉴스 검색해 보는 것만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을 전망하는 데 효과적인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자의 전망이 맞건 틀리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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