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권이든 집권 2년 차쯤 되면 이런저런 일이 터지기 마련이다. 대형 재난일 수도 있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권력형 비리나 뇌물 사건일 수도 있다. 청와대가 그런 일들을 모두 예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국면에서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은 청와대의 실력이다. 전직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폭로에 대한 미숙한 대응은 그래서 실망스럽다.
사건을 복기해 보자. 김 수사관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비위 보고서를 첫 폭로 카드로 꺼낸 건 준비된 한 수였다. 우 대사 보고서는 사건 관련자에게 제보를 받아 녹취까지 첨부했던 건이다. 김 수사관은 당연히 제보자 등을 통해 청와대나 검찰이 우 대사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는 자세를 낮추고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다” 정도로 대응하며 사태 파악부터 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뜸 “(우 대사 문제는) 검찰이 조사했지만 모두 불입건 처리됐다”는 잘못된 해명을 내놓았다.
검찰이 우 대사 문제를 수사한 적이 없다는 건, 청와대가 법무부에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여태 그걸 몰랐다는 건, 인사검증 라인의 어느 누구도 그 일을 안 했단 얘기다(만일 확인했는데도 이런 일이 터졌다면 그건 더 끔찍한 일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우 대사가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사소한 일이 됐다. 오히려 “우 대사 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라는 잘못된 이야기가 청와대 내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따져봐야 할 상황이 됐다.
김 수사관이 보고서를 쓴 지난해 9월은 우 대사 내정 사실이 알려지고 러시아의 아그레망을 기다리던 즈음이다. 여당 실세인 주요국 대사 후보자의 비위 첩보는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됐어야 할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자칫 대통령까지 불똥이 튈 판이다.
초장부터 헛발질을 하면서, 김 수사관의 이어진 추가 폭로는 줄줄이 ‘유효타’ 판정을 받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억울해하는 것처럼 김 수사관의 폭로 중에는 덜 익은 ‘지라시’ 수준의 것도 적지 않은데 그렇다.
이 정도 사고가 났으면 신중해질 법도 한데, 청와대 참모들의 태도는 그렇지 않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 일간지가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인용한 일을 비판하며 “더 이상 ‘급’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말자”고 했다. 또 “문재인 정부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뚱맞은 소리까지 했다. 한 여당 보좌관은 “김 대변인의 선민의식을 보며, 저런 사람을 청와대에 보내려고 내가 선거운동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특감반 파문이 터진 뒤로 고개 한 번 안 숙였던 조국 수석은 최근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미국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노 서렌더(No Surrender·항복하지 않는다)’도 링크했다. 이쯤 되면 요즘 애들 표현으로 ‘노 답(No 答·답이 없다)’이다.
극성스러운 누리꾼들의 공격을 받고 입을 다물었지만 애초에 조응천 의원의 말이 옳았다. 문제가 터지면 “먼저 사의를 표함으로써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 드리는 게 비서된 자로서 올바른 처신”이며 “대부분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특히 이번 일은 ‘늑장’ 대응보다는 ‘과잉’ 대응이 훨씬 적절”했다. 그걸 안 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지금이라도 사과할 건 사과하고, 책임을 물을 사람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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