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우리나라에 신종인플루엔자(H1N1)가 상륙했다. 멕시코를 방문했던 수녀가 첫 확진 환자였다. 치료약은 스위스 로슈사의 타미플루. 신종플루 공포가 커지면서 병원마다 처방 요구가 빗발쳤고 귀하디귀한 약이 됐다. 인구 5%가 투약할 양밖에 비축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비상이 걸렸다. 바이러스 활동이 활발해지는 추운 계절을 앞둔 그해 8월, 다급한 정부가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을 백신과 치료약을 구매하기 위해 유럽 다국적 제약사에 급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신종플루 창궐은 타미플루가 연간 2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가 되는 계기가 됐다. 1996년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시스가 개발한 타미플루는 스위스 로슈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제약회사의 결탁설이 돌기도 했다. 여느 계절독감보다 사망률이 낮았던 신종플루에 대해 2009년 WHO가 대유행(Pandemic)을 선언하면서 제약사는 세계적으로 대박이 터졌다.
▷22일 독감에 걸려 타미플루를 복용한 여자 중학생이 아파트 12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환각 증세를 보였다는데 타미플루는 연간 200건 안팎의 부작용이 신고된다. 이 가운데 섬망, 환각 같은 신경정신적 이상반응은 2014년부터 12건이 보고됐다. 앞서 추락사고가 2건 더 있었다. 2009년 남자 중학생이 “환청이 들렸다”며 아파트 6층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고 2011년에도 열한 살짜리 남자 초등생이 추락사했다.
▷신경정신계 이상 반응은 아직 뇌 발달이 끝나지 않은 아동·청소년에게 주로 나타난다. 뇌를 보호하는 세포막인 혈뇌장벽이 독감 염증으로 손상되면 약 성분이 침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이 제기됐으나 과학적인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10대에게 타미플루 처방을 금지했던 일본도 8월부터 처방을 재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부작용은 드물고 일시적이므로 약을 먹인 뒤 아이를 혼자 두지 말고 유심히 관찰하라고 권고했다. 면역력 약한 아이들이 독감 치료를 중단하면 자칫 치명적인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부모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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