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환자 중심 미래 병원,갈 길이 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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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최근 열린 고려대 의료원 비전 선포식은 첨단 정보기술(IT)이 융합된 행사로 진행돼 참가자들이 감탄을 쏟아냈다. 3차원(3D)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나온 아티스트 염동균 씨가 무대에 서더니 양쪽 팔에 게임기 모양의 조종기를 잡고서 입체영상을 실시간으로 그려냈다.

이날 비전 선포식의 클라이맥스는 미래 병원을 보여주는 4분짜리 동영상이었다. 무인자동차, 스마트진료(원격상담), 병원 내 위치파악서비스, 홈헬스케어, 3D프린팅, 유전자가위, 로봇수술 등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기술들이 녹아들어간 영상이었다.

이번 영상 작업에 참여한 고려대 의료원 박종웅 의무기획처장은 “앞으로 환자 중심의 개인 맞춤형 진료와 스마트 건강관리 등을 잘하는 의료기관이 좋은 병원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동영상에 소개된 환자 맞춤형 치료, 착용형 로봇,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등 대부분 기술이 길어도 10년 이내에 현실화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환자 중심 미래 병원을 조만간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미래 병원을 가로막는 규제가 너무 많다.

미래 병원을 담은 동영상 내용을 갖고 살펴보자. 우선 차 안에서 환자는 차 창문 스크린을 통해 의사와 얼굴을 보면서 수술 뒤 상태를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환자는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바로 옆에 주치의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원격진료 금지 틀에 묶여 당분간 이런 모습을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고려대 의료원이 제작한 미래 병원 영상 속에서 한 의사가 센서가 달린 수술장갑을 끼고 손을 움직이자 로봇이 대신 수술을 하고 있다. 고려대 의료원 제공
고려대 의료원이 제작한 미래 병원 영상 속에서 한 의사가 센서가 달린 수술장갑을 끼고 손을 움직이자 로봇이 대신 수술을 하고 있다. 고려대 의료원 제공
뇌종양 환자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맞춤형 약을 찾아 치료하는 장면도 나온다. 정밀의료는 세계적 대세로 현재 모든 나라에서 경쟁하는 분야다. 같은 해열제나 진통제를 투여해도 어떤 사람은 잘 듣는데 어떤 사람에겐 효과가 없다. 약이 잘 듣는 유전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해 가장 잘 듣는 약을 처방하는 게 정밀의료다.

정밀의료는 빅데이터 활용이 기본이다. 국내에서는 병원마다 경쟁적으로 유전자 분석을 하고 있지만 이를 통합하는 시스템은 거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묶여 데이터 교환이 쉽지 않다. 일부 병원에서는 수십만 건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없어 외국인 유전자 정보를 수입해 활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전 국민 건강데이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방대한 자료를 누구도 쉽게 활용할 수 없다. 기술 차이가 아니라 규제 차이로 의료산업의 선두 자리를 뺏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최근 애플워치에 도입된 심전도 측정기만 해도 그렇다. 아주 고전적인 심전도 측정기이지만 매일 본인 데이터가 축적되면 장기적으로 심장 기능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기능을 도입하기 힘들다. 심전도 측정은 병원에서 의료진만 할 수 있다. 과거 혈압계나 혈당계는 병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체육시설이나 약국, 공중목욕탕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심전도 측정기 사용 제한도 대표적 낡은 규제다.

유방 양성종양 환자들이 20년 가까이 치료에 사용한 맘모톰(절개 없이 혹을 제거하는 시술법)을 최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기술의료평가에서 논문 미비로 탈락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청와대에 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민원을 쏟아냈다. 신기술이 다시 논문으로 인정받으려면 2, 3년이 걸린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이영성 원장은 “맘모톰의 경우 우선 제한적 신기술로 인정해 병원에서 이를 비급여로 사용하고, 동시에 병원에서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실시간 치료 성적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1년 이내로 평가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가 머리를 맞대면 무엇이든 해결할 방법이 있다.

선진국 병원들은 병원의 최대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앞다퉈 고객(환자) 중심 서비스와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만 정부의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손을 놓고 있다가 이런 신기술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어떤 사태가 빚어질까. 미처 대비하지 못한 병원들은 아우성칠 것이다. 세계가 카풀 같은 공유경제에 집중할 때 우리만 방치하다 택시업계가 ‘멘붕’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멋진 미래는 그냥 오지 않는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미래 병원#환자 중심#개인 맞춤형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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