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 손엔 긴 칼을, 다른 손엔 꼬마 아이를 받쳐 들고 중원을 방랑하는 칼잡이 도마. 어느 날 그는 병약해 보이는 한 사내를 수도 장안(長安·현 시안)까지 호송하라는 임무를 받는데, 사내의 정체는 반란군 수장 ‘지세랑’이었다.
무협만화 ‘표인’의 돌풍이 심상찮다. 2015년부터 중국에서 온라인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중국에선 단행본 출간 6개월 만에 30만 부가 팔렸고, 일본 NHK에서도 세 차례 이 작품을 조명했다. 한국에서도 ‘열혈강호’ 양재현 작가와 ‘용비불패’ 문정후 작가의 극찬을 받으며 지난달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표인’을 그린 허선철 만화가(34)는 최근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제가 소수자이기에 쓸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옌볜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이다. ‘표인’은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기 직전인 611년 발생한 민란을 재해석하는데,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 그는 “국가나 민족,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소수민족의 시선으로 주류 사회를 바라봄으로써 그 시대 속 인물들 자체에 대해 더 깊게 탐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식 만화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작가의 데뷔작이란 점에서도 놀랍다. 허 작가는 김애란 소설가의 ‘달려라, 아비’ 등 한국 문학작품을 중국어로 소개하는 번역가로 활동했었다. 그러던 중 26세 때부터 4년간 ‘표인’ 구상에 몰두했다. 그는 “1화를 내기 전 버려진 원고지만 2000장이 넘는다”며 웃었다.
허 작가는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그 섬세한 필체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표인’의 거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도 섬세한 정서 표현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며 “앞으로도 ‘문학으로서의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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