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유물 공개
토기로 얼굴 형상화한 ‘인물식륜’… 마한시대 지배층 무덤서 출토
日고분시대의 대표적 유물, 돗토리현서 출토된 것과 비슷
마형식륜-자라병 등도 발견
누구의 얼굴일까.
전남 함평군 금산리 방대형(方臺形) 고분에서 20일 열린 전문가 현장설명회에서는 한 점의 토기가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치 마스크를 쓴 것 같은 사람 얼굴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가 공개됐기 때문. 평행하게 배치한 눈과 얼굴의 양쪽에는 귀로 추정되는 원형의 투공(透孔) 흔적이 선명했다. 코 주변에는 수염을 표현한 듯 비스듬히 음각된 6개의 선까지. 얼굴을 토기로 형상화한 인물식륜(人物埴輪)이었다.
한반도 유적지에서 처음으로 일본 고분(古墳)시대(3∼7세기) 대표적 유물인 인물식륜이 발견됐다. 5세기 말∼6세기 중엽 마한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되는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에서다. 올해 10월부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시굴조사에서 동물을 표현한 형상식륜이 처음 출토된 데 이어 올해 학술발굴조사에서 우리나라 유적지에서 최초로 인물식륜을 발견했다”며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인물식륜은 일본 돗토리(鳥取)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게 머리 부분이 좁아지는 삼각형 형태다. 일본의 오사카, 나라 등지에서 다수 출토된 식륜은 고분시대 일본의 지배층 무덤 주위를 장식했던 토기를 일컫는다. ‘일본서기’에는 식륜의 유래에 대해 “순장 풍습이 있던 야마토 시대에 땅속에 묻힌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왕이 슬퍼하자 산 사람 대신 흙으로 만든 사람을 묻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말의 얼굴, 등, 다리와 관련된 마형(馬形)식륜 1점도 함께 출토됐다. 앞서 2014년 조사에서는 닭의 머리 부분을 표현한 식륜이 발견된 바 있다. 사람, 동물, 집 모양 등 다양한 토기를 묻어 수장자의 권위를 강조한 고대 일본의 독특한 장례 유물이 한반도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자연스레 식륜이 묻힌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구소 측은 6세기까지 백제의 세력권에 흡수되지 않고,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마한 세력의 활발한 국제 교류를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5세기 중국 남조 시대의 도자기가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이범기 전남문화재연구소장은 “일본의 일부 학계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이 맞으려면 통치 권력을 보여주는 여타 유물이나 고분군 등이 발견돼야 하는데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없다”며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 마한 계통의 토기와 주거지 유적이 발견된 점을 고려할 때 마한이 동아시아 각 국가와 적극적인 교역을 펼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자라병, 동물형상 토기도 함께 나왔는데 4, 5세기 일본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단단한 재질의 스에키(須惠器) 토기 계열로 확인됐다. 유물을 검토한 서현주 한국전통문화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는 “한반도 토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스에키 또는 스에키 계열의 토기로 보인다”며 “일본의 공인들이 한반도로 넘어온 것인지 일본에서 만들어진 토기를 가져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함평 방대형 고분은 무덤 표면에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돌을 깔아 마무리하는 즙석(葺石)분이다. 최대 길이 51m, 높이 8.9m로 현재까지 보고된 즙석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이 소장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마한이 4세기 백제의 근초고왕 대에 병합된 것이 아니라 6세기까지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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