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신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고수 앞에서 먼저 말씀드리다가 낭패를 볼 것 같기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던 중 이같이 말했다. 1년 만에 직접 국민경제자문회의 전체회의를 주재한 문 대통령은 이날 경제 현안에 대해 말을 아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속에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을 놓고 기업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 회의에선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각종 제언과 비판이 쏟아졌다.
○ “노조 불법활동 기업에 부담”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요즘 침체, 부진 얘기를 많이 듣고 심지어는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미래를 향해 열심히 달려갈 수 있는 좋은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비롯한 민간위원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민간위원들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했다. 이미 사의를 표명한 김 부의장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위한 예산 투입에도 고용 지표가 악화된 만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장기적인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김 부의장은 “노동조합의 불법 행위가 좀 과하다고 느끼는 기업들이 일부 있다”며 “적폐청산이 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기업 하려는 분위기를 좀 더 잘 만들어주면 좋겠다”고도 했다. 김 부의장은 회의를 마친 뒤 페이스북에 “적폐청산은 범위와 기준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노조 활동의 자유는 인정하되 불법행위는 막아줘야 한다”고 부연 설명을 하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일자리 창출 기업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과 노동비용의 급격한 상승 등 비용 충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선 경제개혁의 속도를 늦추는 데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 성향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개혁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막는 근본적인 혁신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참석자는 “회의에서 규제개혁, 혁신성장 등 현 정부 정책이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 文 “우리 경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필요”
자문위원들의 진단과 제언이 엇갈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악화 우려에도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여전히 튼튼하다는 점을 부각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추격형 경제로서 우리는 큰 성공을 거둬왔는데 이제는 계속 그 모델로 가는 것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도하려면 필요한 것이 혁신이고, 혁신은 사람에 대한 투자다. 그래서 중소기업 혁신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혁신 중소기업이 되어야 하고 그게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회의에선 제조업과 금융업 등 23개 산업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싱가포르의 ‘산업변혁지도’를 본떠 산업계와 학계, 노동계와 정부가 참여하는 ‘산업혁신전략위원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정책 속도 조절이나 경제정책 전환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상황에서 회의가 상당히 진중한 분위기로 진행됐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오늘 나온 여러 제언들을 바탕으로 각 분과에서 결론을 내 정책 방향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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