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일, 서울의 한 BMW 판매대리점 앞에서 김모 씨는 불에 탄 BMW 520d 승용차를 세워놓고 시위를 벌였다. 김 씨의 차는 타이밍벨트 관련으로 BMW 정비소에서 리콜을 받은 직후였다. 김 씨는 “리콜을 받은 뒤 차에 불이 나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BMW는 상황을 파악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만 했다”며 “다른 고객에게도 위험성을 알리려 전소된 차량을 세워둔 것”이라고 시위 이유를 밝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BMW의 주행 중 화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5년 9건, 2016년 16건, 지난해 39건, 올해 11월까지 접수된 건은 52건이다. 연이은 차량 화재에 BMW는 ‘불자동차’라는 오명도 얻었다.
24일 정부는 BMW 차량 화재와 관련한 민관합동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BMW가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설계 결함을 은폐·축소하고 늑장 리콜을 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는 BMW를 검찰에 고발하고 늑장 리콜에 대해서는 과징금 112억7000만 원을 부과했다.
정부 발표에도 BMW코리아 홈페이지에는 ‘고객에게 죄송하다’ 같은 흔한 사과문도 없다. “소비자 안전에 최우선적 가치를 두고, 최선을 다해 조속히 리콜을 마무리하겠다” 같은 리콜 안내문 정도만 있을 뿐이다. 결함 은폐와 늑장 리콜로 100억 원 넘는 과징금을 받은 기업 태도치고는 뻣뻣하다. BMW는 화재 원인 은폐 및 설계 결함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소비자에 대한 보상 계획도, 사과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BMW라는 브랜드를 믿고 수천만 원을 주고 차를 산 소비자들의 실망과 분노는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BMW 화재 차량 관련 소송 참여자는 3000명을 넘었다. 이들의 소송대리인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접 화재를 겪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BMW 차주들도 스트레스가 크다”며 “혹시나 불이 날까 봐 아예 차를 놔두고 다니고, 화재 때문에 중고차 가격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적게는 수천억 원, 많게는 조 단위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과징금이 무서워서라도 자동차 업체들이 적극 소비자 피해 보상에 나선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BMW 사태가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BMW가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대처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명확한 원인이 나올 때까지 BMW에 판매 중지 명령이 내려지고, 늦장 대응임이 밝혀지면 과징금은 1조 원을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도요타는 렉서스 급발진 결함 문제를 소극적으로 조사하고 부실하게 알렸다는 이유로 12억 달러(약 1조3500억 원)의 벌금을 받은 바 있다.
수입차 업체들이 유독 한국 소비자에게 인색하게 구는 것은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이슈가 잠잠해지고 업체들이 파격 할인을 앞세우면 다시 지갑을 여는 소비 성향도 이들이 한국 소비자를 만만하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1∼11월 누적 판매량 기준으로 BMW는 한국에서 4만7569대를 팔아 벤츠에 이어 2위다.
정부가 결과를 발표한 24일과 25일에도 BMW 차량 두 대는 주행 중 불이 났다. 더 이상 취약한 제도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처벌과 보상을 강화하는 법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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