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전자담배 전자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1998년 여성으로는 첫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된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는 자기 곁에서 누군가 휴대전화를 쓰면 힘들어했다. 두통 때문이었다. 의사이자 공중보건학자인 브룬틀란은 휴대전화 전자파가 두통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일상생활의 전자기기가 내뿜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다만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휴대전화 전자파를 ‘발암가능물질’로 분류했다. 휴대전화 전자파와 암 발생 사이에는 제한적이고 약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IARC는 담배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석면, 벤젠 등 117종의 물질과 함께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오랜 인체 역학조사를 통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얘기다. 출시 1년 만에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 10%에 육박한 궐련형 전자담배가 파고든 틈새는 여기다.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것.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궐련형 전자담배도 타르, 벤젠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하자 미국 필립모리스가 행정소송까지 내며 발끈한 것도 상품의 특장으로 내세운 부분을 건드려서일 터다.

▷유해성 논란에 전자파까지 가세한다면 어떨까. 동아일보가 국가금연지원센터 등과 함께 국내 시판되는 궐련형 전자담배 3종을 분석한 결과 0.68∼3.18μT(마이크로테슬라)의 전자파가 검출됐다. 이 3종은 전자파가 가할 수 있는 인체 손상 등을 방지하기 위한 인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검출된 전자파 수치가 인체에 유해한지는 전문가들 의견이 엇갈린다. 그래도 찜찜하다고 느낄 전자담배 흡연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담배업계는 전자담배 시장을 유망하다고 본다. 최근 ‘말버러’로 유명한 미국 담배회사 알트리아는 전자담배업체 ‘줄’의 지분 35%를 1조4000억 원에 사들였다. 문제점도 적지 않다. 불을 붙이지 않아도 되고 냄새도 거의 없어 청소년이 일반 담배보다 거리낌 없이 접할 수 있다는 건 외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자파 때문에라도 전자담배, 나아가 담배를 끊겠다는 새해 결심을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민동용 논설위원 mindy@donga.com
#who#전자담배#발암물질#전자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