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만 16년을 뛴 ‘원주맨’ 김주성(39)은 25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DB의 안방 원주종합체육관에 찾아와 은퇴식을 치렀다. 눈물 한 방울 없었던 흔치 않은(?) 은퇴식 하루 뒤인 26일 다시 만난 김주성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쉬움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제2의 인생 잘 살라고 축복해 주는 자리잖아요. 더군다나 (DB) 경기 질 뻔해서 ‘지더라도 기쁘게 하자’ 마음먹었는데 이겨서 너무 좋았어요. 후배들이 형 은퇴식에 질 수 없다는 그런 게 보였어요. (김)태홍이의 굳은 리바운드도 있었고(웃음). 더 기분 좋았던 건 저 없이도 너무 잘한 거였어요. 2라운드 때만 해도 후배들한테 문자 보내서 더 잘해야 한다고 푸시도 했는데 이제 진짜 떠나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연수를 하다 일시 귀국한 김주성은 내년 1월 중순 출국할 계획이다. 지도자 준비를 시작한 후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그 질문에 바로 대답이 나오면 이미 뭔가를 하고 있었겠죠”라며 웃는 그는 지금의 시간을 ‘어떤 지도자가 될지 배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농구가 미국에서 시작한 운동이니까 영어도 배우고 있고 다른 팀 감독들 어떻게 하나 보면서 내가 지도자가 되면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겠구나, 찾으러 다니는 과정이죠.”
그가 과정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제가 (커리어) 막판에 3점 쏠 때 다들 ‘몸이 떨어지니 급히 밖으로 나간 것 아니냐’ 했지만 아니었어요. 은퇴 전에 꼭 3점 쏘겠다, 하고 연습하고 있었거든요. 연습이 없으면 뭐든 해낼 수 없을뿐더러 과정 없이 해서 실패하면 후회가 남아요. 그런데 준비를 하고 나면 해서 안 되더라도 속이 후련해요. ‘내 능력이 여기까지구나’ 할 수 있잖아요. 지도자도 과정 잘 밟아서 노력한 다음에 하면 성적이 안 나더라도 충격이 덜할 것 같아요.”
고교 시절 농구를 시작해 프로에서 16년을 뛰었다. 태극마크를 단 기간만도 17년. 프로 데뷔 시즌에는 신인상을, 은퇴 시즌에는 식스맨상을 받았다. 허재 형의 함박웃음과 함께 TG삼보에 1순위 지명을 받은 뒤 ‘이런 애 뽑고 그렇게 좋아했다’는 소리를 안 듣게 노력했다던 신인은 허재의 9번 바로 옆에 자신의 32번 유니폼을 영구결번으로 남겼다. 레전드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은 흔적을 남겼지만 그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 농구를 하면서 운이 많이 따랐다. 막판에도 (DB) 이상범 감독님 만나서 4쿼터에 기용해 주시고. 사람복도 있는 것 같다”라며 공을 돌렸다.
16시즌 숱한 대기록을 남기고 박수 속에 떠나는 그는 이제 또 다른 기록에 도전한다. “천천히, 열심히 해서 최초 2m 감독 한번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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