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6억… 전주 ‘얼굴 없는 천사’ 또 오셨네

“주민센터 주차장에 종이상자”, 27일 전주 노송동센터에 전화
돼지저금통 20만원 등 5000만원
市, 장학생 10명 뽑아 대학까지 지원… 주민센터에 기념비 세우고 뜻 기려

해마다 이맘때면 나타나는 전북 전주시의 ‘얼굴 없는 천사’가 어김없이 올해도 찾아왔다. 19년째다.

27일 전주시에 따르면 40, 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이날 오전 9시 7분경 완산구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종이상자를 놔뒀으니 어려운 이웃에게 써 달라”고 말한 뒤 끊었다.

주민센터 직원이 지하주차장에 가보니 A4 용지를 담는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 상자에서는 지폐 뭉치와 동전이 가득 찬 돼지저금통이 나왔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쇄한 A4 용지도 있었다.

돈은 지폐 5000만 원(5만 원권 1000장)과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동전 20만1950원을 합해 총 5020만1950원. 그가 올해까지 19년간 놓고 간 돈의 총액은 6억834만660원으로 늘었다.

그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연말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을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놓고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아 사람들은 그를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로 부른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성금은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조손가정 등 노송동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돼 왔다. 전주시는 10여 명의 ‘천사 장학생’을 선발해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2009년 노송동주민센터 옆에 기념비를 세웠다. 올 3월에는 100년 뒤 전주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전주의 미래유산으로 확정했고 최근에는 주민센터 입구에 천사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노송동 주민들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해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