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의 해’ 2019년이 다가왔다. 돼지는 복과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럽고 천박하며 게으른, 혐오의 대상으로도 여겨진다. 사실 돼지는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줬다. 그 시작은 가축화였다.
8000년 전 인간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에 돼지 가축화가 이뤄졌다. 돼지의 조상인 멧돼지는 살코기와 기름을 갖고 있어 인간에게 귀중한 식량 자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돼지의 장점은 다산과 빠른 성장이었다. 박준철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양돈과 연구관은 “돼지는 (다산종일 경우) 한 번 출산에 10마리, 연간 두 차례 정도 출산해 총 20∼30마리를 낳는다”며 “임신 기간도 114일로 굉장히 짧은 편”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흔히 사육되는 돼지는 생후 180일이면 체중이 110kg까지 늘어날 뿐만 아니라, 고기 1kg을 얻는 데 사료는 3kg이면 충분하다. 소의 절반이다.
한국에는 약 2000년 전인 고구려 시대에 돼지가 들어왔다. 이 ‘재래돼지’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실상 멸종됐다.
국립축산과학원은 1989년부터 ‘한국형 씨돼지’를 개발하기 위해 재래돼지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재래돼지의 외향적 특징이 기록된 문헌을 토대로 20여 년간 돼지를 교배하고 선발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친 끝에 2008년 재래돼지 ‘축진참돈’을 복원해 품종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재래돼지를 사육돼지로 쓰기에는 생산성이 떨어졌다. 한 번에 낳는 새끼 수도 두세 마리 적다. 지방층도 두꺼워 최근 식문화에 잘 맞지 않았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외래종인 두록 종을 국내 환경에 맞도록 개량한 ‘축진두록’과 재래돼지를 교배해 전체 유전자의 37.5%는 재래돼지, 나머지 62.5%는 축진두록의 것으로 구성된 개량돼지를 2015년 개발했다. 균일한 크기의 우수 품종을 선발하기 위해 3세대를 더 거쳐 최종적으로 ‘우리흑돈’이라는 개량돼지를 얻었고, 2015년 상표 및 특허등록을 마쳤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우리흑돈을 2015년 5마리, 2016년 59마리, 2017년 104마리씩 전국 농가에 보급했다.
돼지는 장기나 체내 물질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최근 가장 큰 화두는 이종 간 이식이 가능한 바이오인공장기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동물의 장기를 인간의 몸에 이식했을 때 일어나는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면역거부반응은 인간의 항체가 돼지의 장기 표면에 있는 당 성분인 알파-갈락토오스를 공격하는 것이다. 2002년 1월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알파-갈락토오스 유전자를 제거한 형질전환 돼지가 탄생했고, 이후 개선을 거듭해 2015년에는 형질전환 돼지의 신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5개월 동안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6년에는 형질전환 돼지의 심장을 개코원숭이에게 이식해 945일간 살아 있게 만드는 기록도 세웠다.
국내에서는 2009년 국립축산과학원이 초급성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형질전환 돼지를 개발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016년 12월 돼지의 췌도를 원숭이에게 직접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는 ‘췌도 이식을 받은 원숭이 8마리 중 5마리가 최소 6개월 이상 생존해야 한다’ 등 이종 간 이식에 관한 기술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는데,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이를 세계 최초로 충족시켰다. 당시 돼지의 췌도를 이식받은 원숭이 5마리 모두 별도의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도 170∼980일 동안 정상 혈당을 유지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019년 1월 돼지의 췌도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계획했지만, 현재 임상시험은 연기된 상태다. 국내에서 아직 이종 간 장기 이식을 뒷받침할 법규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WHO는 임상시험을 할 경우 이식받은 환자의 샘플을 50년 동안 보관하고, 이들을 평생 추적 관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국내에는 이를 뒷받침할 법규가 없어 임상시험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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