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마르셀 뒤샹’전의 큐레이터 매슈 애프런은 20세기 현대미술의 문을 연 마르셀 뒤샹(1887∼1968)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뒤샹의 작품과 기록, 사진 1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뒤샹 초기부터 말년 작품까지 시간 순서대로 구성된다. 일본 도쿄, 서울에 이어 호주 시드니를 순회하는 전시를 위해 뒤샹의 삶과 예술 전반을 보여주는 작품을 엄선했다. 초기 회화부터 ‘샘’, ‘병걸이’ 등 레디메이드와 후기 미니어처, 조각은 물론 최후의 작품인 ‘에탕 도네’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애프런 큐레이터를 만나 ‘뒤샹’전 관람 포인트를 짚어봤다. 그는 뒤샹이 규칙을 파괴하는 과정이 마치 체스 게임 같다고 설명했다. 뒤샹은 실제로도 프로 체스 선수였다.
“뒤샹은 26세에 회화를 그만두고 ‘레디메이드’를 발명하죠. 체스 선수가 된 뒤엔 ‘에로즈 셀라비’라는 가명으로 예술을 합니다.”
이후 착시나 조각을 활용하는 전반적 과정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했다.
“한 수를 두고, 다음 무엇을 할지 가늠한 뒤 또 과감한 수를 두는 식이죠. 그래서 작품을 순서대로, 맥락 안에서 봐야 더 이해가 쉽습니다.”
뒤샹은 미술관에 변기를 갖다 놓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인 파격성, 도발성으로 흔히 기억된다. 그러나 애프런은 그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전략가이자, 20세기의 중요한 미학적 질문을 던진 사상가라고 설명했다.
“파격은 당시 예술가가 즐겨 쓴 방법이에요. 입체파, 다다 예술 모두 충격으로 관객의 주목을 끌었죠. 이걸 누구보다 잘했던 게 뒤샹이지만, 충격뿐이었다면 그 의미가 지속될 수 없었을 겁니다.”
뒤샹이 던진 미학적 질문은 ‘손으로 만드는 예술’의 정의를 깨는 것, 아이디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레디메이드 작품 대부분은 1950년대 그가 유명해진 뒤 다시 만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물건이 아닌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뒤샹은 작품이 한곳에 모이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1940년대 미술관이 작품 소장을 시작할 때, 전시와 도록 디자인에도 직접 참여했습니다. 후원자인 아렌스버그 부부에게 작품 구입도 조언했죠. 작품 수가 적고, 맥락이 중요하기에 흩어지지 않아야 후대가 이해한다는 걸 잘 알았습니다.”
아렌스버그 부부는 1946년 작품 대부분을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작품을 보러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관객이 필라델피아를 찾는다. 애프런은 작품 교체를 위해 갤러리를 닫을 때마다 아쉬워하는 외국인 관람객을 만났다고 한다. 이 때문에 뒤샹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을 찾게 된 것이 더욱 뜻깊다고 했다.
“도록을 젊은 관객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저렴하게 만들었습니다. 뒤샹을 직접 만나고 싶다면 뒤편의 인터뷰를 먼저 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꼭 필라델피아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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