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월, 화신무역상사는 화물선 앵도(櫻桃)호를 부산항에서 출항시켰다. 태극기를 달고 해외로 취항한 첫 무역선이다. 이 배에는 우뭇가사리의 일종인 한천(寒天)과 마른오징어 같은 건어물이 실려 있었다. 앵도호 선원들은 홍콩과 마카오에 머물며 이 상품들을 팔고 현지 상인들과 추가 무역 협상을 벌였다.
▷앵도호가 취항한 1948년 한국의 수출액은 1900만 달러. 수출대상국도 중국과 일본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건어물과 계란, 사과, 배 같은 농수산물과 아연, 흑연, 철광석 같은 광물이 주요 수출품이었다. 1959년 동광 메리야스가 미국으로 스웨터 300장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의류, 신발 같은 공산품이 농수산물을 대체해 갔고 1980년대에는 경공업 제품이 주요 수출품목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선 반도체, 자동차, 선박 같은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은 28일 11시 12분 기준으로 올해 수출이 60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70년 전에 비해 수출이 3만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니 격세지감이다. 1995년 1000억 달러를 수출한 이후 23년, 2011년 5000억 달러를 수출한 이후 7년 만에 일군 쾌거다. 연간 수출 6000억 달러를 넘은 것은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다.
▷역대 최대 수출 기록을 달성한 것은 반갑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2014년엔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11%였지만 올해는 21%까지 올라갔다. 세계적인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덕을 본 측면이 크다. 그러나 내년 공급과잉이 예상되면서 이런 호황도 끝물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반도체 출하량이 16.3% 줄어들면서 2008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과거 옷이 마른오징어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듯, 이제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반도체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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