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10시 42분경 서울 서대문구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3층 지구환경관. A 씨(40)는 겨울 휴가를 맞아 7세, 4세 두 아들과 전시를 구경하다가 ‘하얀 날벼락’을 맞았다. 갑자기 천장에서 ‘퍽’ 소리가 나더니 희뿌연 가스가 쏟아져 3층을 가득 채운 것이다. 당시 3층에 있던 2∼7세 아동 7명과 30, 40대 부모 6명 등 13명이 기침과 비명을 쏟아내면서 일대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는 바닥에 구토를 하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은 하얀 가스에 시야가 가려 비상구 불빛이 안 보이는 혼란에 빠졌다가 간신히 구조됐다.
○ ‘3’ 버튼 잘못 눌러 대혼란
연말을 맞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찾은 가족들을 덮친 사고는 소방시설 점검업체의 황당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점검업체 직원이 지하 1층에서 소방시설 작동 기능을 점검하다가 3층의 소화시설을 작동시키는 ‘3’ 버튼을 실수로 눌렀다고 한다. 당시 박물관 직원이 옆에 있었지만 실수를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검업체 직원이 작동 버튼을 누르자 3층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가스형 소화약제 ‘NAF S-Ⅲ’가 당시 현장에 있던 관람객들을 덮치면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3층 관람객 13명은 뿌연 가스에 갇혀 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구조된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3층에 있던 관람객 일부는 가스를 마시고 실신했다. 구조된 13명 중 7명이 두 살배기 외국인 어린이 등 7세 이하 영·유아였다. 이들은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어지럼증과 어깨 통증 등을 호소하고 있다.
소화약제 설비를 오작동시킨 점검업체는 소방청장이 실시하는 관리사시험을 통과해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공인된 곳이었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건물 관계인은 소방시설 점검을 소방시설 관리업체에 위탁할 수 있고, 업체 소속 소방시설관리사들이 시설을 점검한다. 본보는 해당 점검업체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전문가가 점검했는데도 이런 황당한 사고가 발생하자 소방당국이 소방시설 점검업체의 인력 운용을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관리사들은 전문적인 인력이라 실수가 덜하지만 보조 인력이 실수해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 “기준치 이상 흡입하면 부작용 있어”
박물관 3층을 덮친 소화약제 ‘NAF S-Ⅲ’는 청정 소화약제라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이 소화약제는 가스 형태로 돼 있어 불을 끌 때 이물질이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약제로 인한 유물의 손상을 막기 위해 박물관에서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준치 이상 소화약제를 흡입하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노출된 사람들이 구토나 현기증을 호소했다면 약제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을 초과해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색무취한 약제의 누출을 방지하려고 넣는 오렌지향이 나는 부취제가 몸에 묻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사고 현장에서는 오렌지향이 진동했다. 당시 3층에 있었던 A 씨는 “가스 때문에 옷에도 얼룩이 지고 냄새도 빠지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사고 직후 하루 동안 휴관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박물관 화재보험으로 부상자의 병원비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이 상당히 놀라셨을 텐데 죄송한 마음”이라며 “병원비 지원뿐 아니라 다른 피해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 최대한 불편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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