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술년(武戌年)에 크고 작은 별들이 졌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작고하며 ‘3김(金) 시대’가 막을 내렸고,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배우 신성일 등 여러 분야의 주요 인사들이 별세했다.
김 전 총리가 6월 23일 향년 92세에 숙환으로 영면해 김영삼(YS·1927∼2015), 김대중(DJ·1924∼2009)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던 3김이 모두 우리 곁을 떠났다.
JP는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군사정변에 가담한 뒤 초대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과 국무총리, 민주공화당 총재 등을 지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며 민주화의 상징인 YS, DJ와 손잡고 ‘킹 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정치권에 대한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올해 4월 동아일보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지도자는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에 빠져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인 박영옥 여사가 2015년 별세했을 때 “곧 따라가겠다. 마누라와 함께 눕겠다”고 했던 말처럼 충남 부여군 가족묘의 부인 곁에 묻혔다.
앞서 4월 18일 김상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폐암 투병 중 별세했다. 고인은 친화력이 뛰어나 한국 정치의 마당발로 불렸다. DJ와는 영원한 정치 동지였다. DJ가 1950년대 운영한 동양웅변전문학원에서 인연을 맺고 1965년 30세 때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6선 의원을 지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1월 31일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별세했다. 그는 국악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헌신했다. 1962년 사상 최초의 현대 가야금 곡 ‘숲’을 발표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곡가 존 케이지와 교류하며 국악과 현대예술의 결합도 시도했다.
11월 4일에는 배우 신성일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투병 중에도 이장호 감독과 함께 가족영화 ‘소확행’을 준비하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고인의 아내이자 동반자였던 배우 엄앵란 씨는 “(남편은) 일에 미쳐 집안은 나에게 맡기고 영화만 하러 돌아다녔다. 그렇기에 어려운 시절에 대히트작을 만들고 제작자도 살리고 그랬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3수 끝에 2000년 대구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잠시 ‘정치 외도’를 했지만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 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4월 16일 원로 여배우 최은희 씨가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김지미 엄앵란과 ‘원조 트로이카’로 불리며 1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남편 신상옥 감독(1926∼2006)과 1978년 납북됐다가 1986년 함께 탈출하는 등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7월 23일에는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최인훈 선생이 지병으로 타계했다. 1960년 발표된 소설 ‘광장’은 전후 최초로 남북 문제를 다뤘고 2004년 문인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다. 1977∼2001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신경숙 함민복 등 작가 양성에도 힘썼다.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10월 2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 명예교수는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작가들의 신작을 빠짐없이 읽고 비평하는 작업을 최근까지 계속했다.
재계에선 5월 20일 구본무 회장이 악성 뇌종양 선고를 받고 1년간 투병하다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별세했다.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경기 광주시 곤지암 부근에서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러졌다. 평소 환경보호와 수목장에 관심이 많았던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7월 23일 동생이 살던 서울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소 국회의 특권 폐지를 주장해온 그는 유서에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죄송하다’고 적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예비역 중장·육사 37기)도 수사를 받다 12월 7일 한 지인의 사무실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고인은 유서에 ‘세월호 사고 당시 기무부대원들은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지금 그때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으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고 적었다.
▼美 ‘父子대통령’ 부시-英 물리학자 호킹도 별세▼
● 국제
2014년 만 90세의 나이에도 비행기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30일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숨졌다. 아내 바버라 여사(1925∼2018)가 타계한 지 7개월 만이었다. 공화당 출신으로 1989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에게 져 재선에 실패한 뒤 고향 텍사스로 돌아와 노후를 보냈다. 아들 조지 W 부시가 2000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올라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 됐다.
앞서 3월 14일 세계적인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1세 때부터 루게릭병(근위축성 경화증)으로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블랙홀이 있는 상황에서의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를 집대성하는 등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그는 “블랙홀이 보이는 것처럼 완벽하게 검은색은 아니다. 반대편이나 또 다른 우주로 탈출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막막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분명 탈출구가 있으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8월 16일 미국의 대표적인 솔 가수 중 한 명인 어리사 프랭클린이 76세로 별세했다. 그는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여성 흑인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11월 26일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연출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는 대담한 성적 묘사로 외설 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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