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셋째 아이를 낳은 이모 씨(35·여)는 내년 복직을 위해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보다가 혼란에 빠졌다. 태어난 지 2년이 되지 않은 영아를 돌봐주는 만 0세반을 내년에 운영하겠다고 공고한 어린이집이 동네에 한 곳뿐인데 이미 정원이 차 버린 상태였다. 이 씨는 “아이를 낳았을 땐 ‘애국자’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정작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복직을 포기할 판”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 출생아 급감으로 ‘0세반 대란’ 조짐
올해 전국 어린이집 0세반 수와 0세반에 다니는 아동의 수가 지난해보다 모두 줄어든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최근엔 내년도 0세반 모집을 아예 포기한 어린이집이 늘어 복직 등을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부모들의 불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1월 말 기준 전국 어린이집 0세반이 2만7385곳으로 집계돼 지난해 말(2만8915곳)보다 5.3% 줄었다고 밝혔다. 0세반에 다니는 아동 수도 8만1469명에서 7만6749명으로 5.8% 줄었다. 0세반엔 직전 연도 1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가 배정된다. 올해는 지난해 1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가 이에 해당한다. 1세반은 2016년생, 2세반은 2015년생이 배정된다.
0세반 감소는 무상보육이 정착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된 이듬해인 2014년 전국 어린이집 0세반은 2만6373곳, 0세반 아동은 7만2585명이었다. 그 수는 지난해까지는 계속 증가했다. 이는 저출산 현상으로 0세반 규모가 줄었을 것이란 통념과 다른 결과다. 국내 출생아 수는 2015년 43만8420명에서 2016년 40만6243명, 지난해 35만7771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출생아가 줄었음에도 0세반이 꾸준히 늘어난 것은 육아휴직을 마치자마자 복직하려는 맞벌이 부부의 0세반 수요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런 0세반 증가 경향이 올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이는 출생아 감소세가 워낙 가팔라 0세반 수요를 압도한 결과로 분석된다. 신생아가 급격히 줄면서 0세반을 운영하기 힘든 어린이집이 늘어났고, 이에 신생아를 맡길 곳이 더욱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0세반은 앞으로 더 급격하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10월 출생아는 27만8500명으로 잠정 집계돼 지난해 같은 기간(30만5556명)보다 8.6%나 감소했다.
○ ‘지역 소멸’ 위기 올 수도
일선 어린이집에선 적자를 보지 않고 0세반을 운영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0세반 아동 정원은 보육교사 1명당 최대 3명이다. 손이 많이 가는 영아의 특성상 1세반(5명)이나 2세반(7명), 3세반(15명)보다 적정 정원이 적다.
정부의 인건비 지원 대상이 아닌 민간어린이집은 0세 아동 1명당 월 87만8000원의 보육료를 지원받는다. 아동을 정원보다 1명만 덜 받아도 보육교사 1명당 월평균 인건비인 184만3000원(2015년 기준)을 맞출 수가 없다. 적자가 난다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전해 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0세반 정원인 3명을 1년 내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면 아예 0세반 모집을 포기하는 어린이집이 속출하고 있다. 장진환 전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보육교사 인건비가 오르면 0세반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김모 씨(34·여)는 “아이가 3명인 데다 맞벌이 부부라서 어린이집 입소순위 점수가 700점 만점인데도 0세반 대기 순번이 15번째”라고 호소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0세반이 줄어들면 아이를 맡길 수 없게 된 부부가 아예 살던 곳을 떠나 ‘지역 소멸’ 현상을 앞당길 수 있다”며 “신생아가 1명만 있어도 0세반을 운영하도록 정부가 적자를 보전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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