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년이 다 끝나가는 11월에야 점자책이 왔더라고요. 이미 중간고사 때 시험 친 범위인데 그때서야 책이 온 거예요. 제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1년 내내 사정했지만 소용없었어요.”(서울 A맹학교 학부모 명모 씨)
시각장애가 있는 중2 아들을 둔 명 씨는 지난달 택배기사에게서 대형 손수레를 빌렸다. 며칠 전 집으로 배달 온 라면박스 6개 분량의 책을 곧바로 내다버리기 위해서였다. 박스 안에 든 책은 그가 지난해 12월 국립특수교육원 측에 점자화를 부탁한 참고서 6권이다. 명 씨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요청하면 교육부가 EBS 문제집이나 참고서 등을 점자화해 주도록 돼 있지만 수업 진도에 맞춰 제때 점자책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내버려야 할 책을 뒤늦게 찍어 보내는 게 예산 낭비이자 탁생행정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토로했다.
지난달 시청각 중복장애 학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전기 보도(동아일보 11월 19일자 A2면 참조) 이후 장애학생의 학습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국내 장애학생들은 학교 교육의 기본이 되는 책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학교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농학교 모두에서 소외된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의 학습권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헬렌 켈러’들을 위한 입법이 추진되는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명수 위원장은 현재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시청각 중복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일명 ‘헬렌켈러법’을 이르면 내년 1월 발의할 예정이다. 국내 시청각 중복장애인은 1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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