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에 두고 읽고 살아도 벅차오르고, 쓰고만 지내도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말(言) 속으로 밀려난 아이였던 저는 구름을 잡아두던 데 쓰던 거울들을 어느새 얼굴 바짝 들이대 면도하고 늘기만 한 흰머리를 뽑는 데 쓰고 있었습니다. 뿌옇게 맺힌 상(像)들이 못마땅해 씩씩댈수록, 떠오른 것들은 뜬구름보다 빨리 이지러졌습니다. 저의 말이 차츰 오므라들고 일그러져 가니, 침묵의 삶 속에 잠겨드는 게 차라리 사람 된 도리 아닐까, 머뭇대고 또 망설이던 게 바로 어제 일입니다. 빠직, 하고 일순 그 참람한 거울을 깨뜨린 건 당선을 알리는 벨소리였습니다. 제 말들의 미약한 떨림이 세상과 진동을 공유할 수도 있겠다는, 작은 가능성을 남겨줬습니다.
하여 옛 임금이 등장하는 작품을 쓴 다음이면 그의 무덤으로 참배를 가고 마는 저, 그 사실에 악의 없이 폭소하던 친구에게 “넌 작가 뒈지고 나면 책도 안 읽을 거냐?”면서 반향 없는 혼잣말만을 되뇌어왔던 그런 저, 이젠 마주 울리는 다른 소리들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그 전에, 심사위원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제 작품은 몹시 둔중하고 투박합니다. 보다 날카로운 안목 앞에 그 부족함이 훤히 드러났다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이 홧홧합니다. 당장 성과보다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기대하고 계신 거라고, 부끄럼을 내심 무마해 봅니다. 저버리지 않게, 앞으로 더욱 구르겠습니다.
△1985년 서울 영등포구 출생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심사평
육체와 정신의 생존 끝까지 대결시킨 수작
응모편수는 줄었지만 수준은 높아졌다. 희곡 쓰기의 어려움은 올해 더 가중됐을 것이라 예상했다. 기본적으로 극작술을 내 것처럼 부리는 데 일정 시간이 걸리는 것에 더해, 올해처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많은 시기에 자신만의 통찰이 있어야 하는 희곡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예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 현재 우리 사회가 아파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속속들이 소재가 침투돼 있었다. 그것을 다룸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췄다. 무엇보다 발로 뛰며 쓴 희곡들, 당장 배우 입에 붙여도 손색없는 대사, 그리고 소재를 대하는 쓰는 사람의 윤리에 대한 고민이 동반돼 아름다웠다. ‘치킨 런’ ‘플랫폼’ ‘마지막 헹굼 시 유연제를 사용할 것’ ‘그토록 찬란한 생일 파티’ ‘유리구두’ ‘걔가 왜 그랬을까’ ‘불면증’ ‘그 남자 흉폭하다’가 그랬다.
최종 논의작은 ‘발판 끝에 매달린 두 편의 동화’와 ‘풍등’이었다. ‘발판…’은 문학적 희곡이 ‘행위’를 지연시키며 ‘수사(rhetoric)’에 빠지는 함정을 가뿐히 건너뛰며, 작가가 깊이 곱씹어본 ‘사유’의 말들로 말의 발화 자체가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풍등’의 공연성은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생존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을 ‘육체의 생존’과 ‘정신의 생존’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끝까지 맞붙임으로써 윤리적으로 탁월했다.
두 희곡 다 좋았다. 우리는 우열 가리기를 포기하고 어떤 선택을 했다. 결과는 ‘발판…’이었다. ‘풍등’이 단막보다는 좀 더 긴 호흡의 길이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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