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관석]‘해킹’ 숨긴다고 비핵화가 당겨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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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석 정치부 기자
장관석 정치부 기자
처음엔 일부러 쉬쉬하는 줄만 알았다.

러시아 인터넷주소(IP주소)를 이용한 해커에게 e메일을 해킹당한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얘기다. 지난해 12월 10일 기자가 해킹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백 의원은 “무슨 소리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심드렁해했다. 그러다가 이틀 뒤 “국회 국방위원인 내게 군과 국회 누구도 피해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며 씩씩거렸다. 심지어 우방국이 추가 해킹 동향을 한국에 알려줄 때까지 우리 정부는 몰랐더란다.

탈북민 997명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가 털린 경북하나센터 해킹 사건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일어난 이 사건을 국가정보원은 한 달이 훌쩍 넘은 뒤에야 인지했고, 탈북민에게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통지한 건 이보다 더 뒤다. 이들은 북한에 아직 가족이 남아 있다.

해커들의 치밀한 노림수도 노림수지만 이에 못지않게 놀라운 건 정부의 지지부진한 후속 조치다. 백 의원은 군 사이버사령부가 국회 국방위원장실에서 해킹 자료를 입수해 간 뒤에도 정작 피해 당사자인 본인에게는 피해 사실을 설명해 주지 않은 점에 황당해했다. 국회의원 사정도 이럴진대 탈북민들은 오죽하랴. 개인 정보가 유출된 탈북민들은 본인은 물론 북한에 있는 가족이 입을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킹 주체를 놓고 북한을 곁눈질하지만 해킹 주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해킹 주체를 확인할 역량이 부족해서이겠나. 사이버 강국인 한국의 뛰어나고 종합적인 사이버 대응 역량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과거 정부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2011년 농협 전산망 해킹 사건, 2014년 한국수력원자력 해킹이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을 합리적 근거와 함께 제시한 바 있다. 사건 구조가 더 복잡했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기민했고, 역량은 탁월했고, 투지는 끈질겼다.

반면 지난해 유독 잦았던 해킹 사건의 수사는 더디게만 느껴진다. 해킹 수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지만 정부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수사기관에서도 이번 일련의 해킹과 북한과의 연관성을 거론하기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 앞서 두 사건도 주요 관계부처가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북한 추정 해킹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한반도 대화 기조를 깨뜨리기 부담스러운 정부가 해킹 사건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말 기대를 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세밑 ‘깜짝 친서(親書)’와 신년사로 남북 간 화합과 협력 의지는 여전해 보인다. 이런 평화 행보에 보수 야권은 “북한의 쇼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북한에 속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또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북한의 진짜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사이버 안보 태세 역량을 되돌아봐야 한다.
 
장관석 정치부 기자 jks@donga.com
#백승주 의원#해킹#경북하나센터 해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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