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주요 그룹 총수들이 일제히 내놓은 신년사에는 글로벌 경기 하락, 미중 무역갈등 확산 등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 점이 엿보였다. 주요 기업은 매년 총수 명의의 신년사를 통해 그해 그룹의 경영 비전을 내놓는다. 신년사에는 그룹 경영진의 새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녹아 있다.
위기 극복이 신년사의 키워드로 부상한 것은 2016년부터다. ‘불확실성 해소’ ‘4차 산업혁명’도 단골 키워드가 됐다. 올해는 위기가 좀 더 구체화됐다. 삼성, 현대자동차그룹 등은 일제히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위기 속에 세대교체를 단행한 주요 기업은 혁신을 통한 패러다임 전환을 다짐했다.
○ “법고창신” “승풍파랑” 위기 극복 주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전 경기 수원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2019년은 삼성전자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라며 “10년 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한 것처럼 올해는 초일류·초격차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자”고 당부했다. 김 부회장은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하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강조했다.
지난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 관세 부과의 직격탄을 맞았던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은 “글로벌 무역전쟁이 확산될 우려가 있고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승풍파랑(乘風破浪·뜻을 이루기 위해 난관을 극복하다)의 정신으로 정진하자”고 위기대응 체계를 주문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미중 무역분쟁, 신흥국 금융 불안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대내적으로도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주문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각오는 비장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기존 업무방식을 새롭게 혁신하는 ‘비즈니스 전환(Business Transformation)’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의 변화가 순식간에 우리의 주력 사업을 쓰나미처럼 덮쳐 버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앞으로 10년이 한화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인재를 키우고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자”고 당부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올 한 해 경영환경과 관련해 벌써부터 우려의 소리가 많이 들린다. 어떻게 생존할지 고민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고객의 소리가 답”이라고 했다.
○ 시무식 첫 주재 정의선, 구광모 “계승과 혁신”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처음으로 시무식을 주도하고 신년사를 냈다. 재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2016년 정몽구 회장이 마지막으로 시무식을 주재한 뒤 이듬해부터는 각 계열사 수장들이 각각 시무식을 열었던 현대차그룹은 3년 만에 그룹 전체 시무식을 재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현장경영’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의 판도를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기차, 수소차 등 모든 타입의 친환경 모델을 개발해 2025년에는 친환경차 44개 모델, 연간 167만 대 판매를 통해 클린 모빌리티로 전환하겠다”며 미래차 판매 목표도 제시했다.
지난해 총수로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 새해모임’을 열고 임직원들과 직접 만났다. 구 회장은 “대표로 선임된 후 LG가 쌓아온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동시에 변화할 부분과 나아갈 방향을 수없이 고민해 보았다”며 “결국 그 답은 ‘고객’에게 있었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10분간의 신년사 중 ‘고객’을 총 30번 언급했다. 이날 시무식에는 예년과 달리 경영진뿐만 아니라 생산직, 연구직 등 일반 직원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당신의 행복이 기업의 행복”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갑질’ 등 최근 화제로 떠오른 키워드를 반영한 듯한 신년사도 눈길을 끌었다. 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임직원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주요 계열사 사장들과 함께 행복을 주제로 대담하는 형식의 신년회를 열었다. 최 회장은 “구성원의 행복을 키우기 위해선 리더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며 올해 100번에 걸쳐 직원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항공 조원태 사장은 “이제 회사는 임직원에게 보답한다는 자세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나눌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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