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일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신년회 장소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로 고른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사전 배포된 원고에는 없었던 내용으로, 올해 문 대통령이 지향하는 경제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를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많은 시민들이 “함께 잘사는 기회로 가는 첫해”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 개혁과 혁신도 더 강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文 “촛불처럼 경제 기조와 큰 틀 바꿔야”
집권 3년 차를 맞은 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다시 ‘촛불’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촛불은 더 많이 함께할 때까지 인내하고 성숙한 문화로 세상을 바꿨다. 같은 방법으로 경제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의 기조와 큰 틀을 바꾸는 일이다.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살펴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기 경제팀 출범 이후 경제정책의 궤도 수정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가겠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31일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시행령을 개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난해 말부터 눈에 띄게 하락한 지지율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보 진영이 “개혁에 미온적이다”고 반발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촛불 정신을 거론하며 경제 개혁을 천명하는 방식으로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의 이탈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도 “활력! 중소기업”이라고 적는 등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에게 각별한 신경을 썼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날 ‘소득주도성장’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만큼 그 취지는 살리되 다른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 경제 25번, 평화 9번, 공정 3번 언급
지난해 악화된 각종 경제 지표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경제 분야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A4용지 다섯 장 분량의 연설문에서 ‘경제’를 25차례 언급했다. ‘평화’(9회), ‘공정’(3회) 등 다른 키워드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연설은 100% 경제에 집중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혁신이 있어야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고, 저성장을 극복할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다”며 규제 개혁과 혁신을 재차 강조했다. “기업의 혁신과 함께하겠다”고 공언한 문 대통령은 데이터, 인공지능, 수소경제, 스마트공장, 자율주행차 등 혁신 성장을 위한 예산을 본격적으로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경제 발전도 일자리도 결국은 기업의 투자에서 나온다”며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4대 그룹의 핵심 사업장을 방문하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달라”고 강조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 양보와 고통 분담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불발된 ‘광주형 일자리’ 역시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노동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신년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총괄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정부 들어 4대 그룹 총수가 청와대 초청 행사에 모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는 삼성은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LG는 구본준 부회장이 참석했다.
4대 그룹 총수들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등과 함께 6번 테이블에 배정됐다. 청와대와 국회에서 온 다른 참석자들은 이들이 앉은 6번 테이블을 가장 많이 찾아 인사를 나눴다. 다만 헤드테이블에 앉았던 문 대통령은 경제계 인사들과 따로 인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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