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안진이 옮김/472쪽·1만7000원·어크로스
누구나 이맘때쯤 그간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고, 살아갈 날들을 그려본다. 희망으로 풍족해지기도, 시름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나이는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마사 누스바움 미국 시카고대 법학·윤리학 석좌교수(72)와 솔 레브모어 전 시카고대 로스쿨 학장(66)이 철학과 문학, 법학을 넘나들며 노화에 대처하는 법을 논했다. 죽음에 관한 책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고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성찰했다. 이 모든 게 “나의 내면과 외면을 돌보면서 더 좋은 모습으로 나이 들기 위함”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정 자체가 깊어지는 것과 함께 세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는 것. 이것은 매우 귀중하며 다른 경로로는 쉽게 얻지 못하는 혜택입니다.”
두 저자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쓴 ‘나이듦에 대하여’, ‘우정에 관하여’를 참고해 노인에게 닥친 권태와 불안을 해소하는 데 우정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역설했다. 레브모어는 키케로가 살던 당시 “우정은 불필요한 짐”이라는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새롭게 사귀는 친구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만 주목해 이로 인해 생기는 기쁨을 평가절하했다”고 비판한다. “친구를 선택하고 우정에 투자하는 과정 자체가 여전히 우리가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징표”라는 것이다.
사실 피부에 와닿는 건 정서적인 측면보다 깊어진 주름과 처지는 살일지도 모른다. 레브모어는 주름을 제거하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60대 미국인에게 “깊어지는 주름살에서 매력과 가치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충고한다. 현대 사회가 노인의 몸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이에 대한 혐오는 여전하지 않은가. 누스바움의 말대로 노인들이 “의학에 의한 외적 통제의 힘만이 아니라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이라는 더 교활한 힘에 굴복”하는 셈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우리에게 노년기를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레브모어는 “우리는 노년기에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될 때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징표를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리어와 닮은꼴”이라고 했다. 딸들의 사랑 표현에 따라 재산을 분배한 리어왕은 공평한 재산 분배와 자녀와의 올바른 관계 형성에 실패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이 찾아온다.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기보다 ‘경험의 승리’를 추구할 때 더 재미있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 리어는 존중을 얻기 위해 이 딸에게서 저 딸에게로 옮겨 다니기만 했을 뿐 자기가 할 일은 남겨두지 않았다.”
‘나이듦에 대하여’처럼 주제별로 노년에 접어드는 두 학자의 에세이를 겹쳐 놓았다. 철학자인 누스바움과 법, 경제 전문가인 레브모어의 시각차도 볼거리 중 하나. 서로의 주장에 동조하지만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은퇴한 사람들이 모인 실버타운을 누스바움은 “순간의 쾌락을 탐닉하는 현재지상주의”라고 비판하지만, 레브모어는 “자기 주도권을 갖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노인의 심리”라며 받아들인다.
적절한 은퇴 시기, 중년 이후의 사랑뿐 아니라 노년의 경제적 불평등과 노인빈곤 등 사회적 문제를 들춰본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적지 않다.
“노년기에만 맛볼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고통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노년을 기회의 시기로 생각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노년의 수수께끼를 깊이 성찰하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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