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세계 증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애플이 중국시장 부진을 이유로 매출 전망치를 크게 내리면서 3일 애플 주가를 포함한 미국과 유럽 일본 증시가 일제히 주저앉았다. 그제 2,000 선이 붕괴하면서 2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던 한국의 코스피는 다행히 어제는 반등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양새다.
올해 세계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잿빛이다. 중국의 경기가 둔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했던 미국마저 불황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퍼펙트 스톰(초대형 경제위기)이 닥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돌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2년 반 만에 처음 50 아래로 떨어져 경기 위축 수준에 접어들었고, 미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몇 달째 기준치 100을 밑돌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좋을 때도 부진을 면치 못했던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비상이다. 올해 경기 전망을 보여주는 각종 수치들은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작년 말 생산과 투자가 동반 감소세로 돌아섰고 경기선행지수는 18개월 연속 하락해 6년여 만에 최저치다. 그동안 성장을 이끌어 왔던 반도체와 스마트폰 산업마저 올해는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걸으리라는 분석이다.
나라 안팎의 환경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정부와 여권의 경제 인식은 한가하다 못해 현실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금주 초 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은 “4∼5% 성장을 못한다고 경제위기냐?”고 반문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경제위기론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 이념 동맹이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경제위기에 대한 근거 있는 걱정들을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는 주장이야말로 가짜뉴스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작년에 가계부채가 1500조 원을 넘어섰다. 서민들이 빚을 갚으려면 일자리가 많아지고 소득이 높아져야 하는데 기업 활동은 위축되고 지난해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은 되레 줄었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수출 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데 한국은행만 계속 금리를 동결할 수는 없어 거시경제 운용의 폭도 좁다. 부실산업 구조조정과 신산업 개발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불확실한 대내외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지하 벙커라도 운영해야 한다. “위기가 아니다”는 현실 부정이야말로 진짜 경제위기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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