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초 잠적한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가 미국행을 원한다고 이탈리아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탈리아 최대 유력 일간지인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조 대사대리가 우리 정보국에 경호와 지원을 요청했으며 미국에 망명 요청을 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외교관에 따르면 조 대사대리가 북한대사관을 이탈한 직후 이탈리아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에게 이 사건이 보고가 됐고, 총리는 그의 보호를 위해 어떤 정보도 새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 대사대리가 도움을 요청한 직후부터 공조에 나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철저하게 보안 유지를 당부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전했다.
이 신문은 콘테 총리와 정보당국 수장들이 미국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 대사대리의 신병과 관련한 협의를 은밀하게 진행해왔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외교부는 3일 공개적으로는 “조 대사대리의 망명 요청이 오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정보국을 포함해 다른 정부기관에 지원 요청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미 이탈리아의 북한 외교관 리스트에는 조 대사대리의 이름이 사라지고 11월 20일자로 후임자 이름인 ‘김천’이 등장했다.
그가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조 대사대리가 미국행을 원한다는 보도가 사실로 확인되면 한창 협상 재개를 준비 중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라 레푸블리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몇 달 전부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미국은 이번 망명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 가운데 장승호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가 1997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한 바 있다.
조 대사대리와 친분이 있던 이탈리아 정치권 인사들은 그의 잠적을 의외로 여기는 분위기다. 안토니오 라치 전 상원의원은 3일 이탈리아 및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29일 북한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이탈리아 사업가들과 함께 조 대사대리와 점심 식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자리에서 조 대사대리는 평양 복귀 소식을 전하며 ‘그 전에 가족과 밀라노나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북부 쪽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떠나기 전에 건배하자.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고 전했다. 라치 전 의원은 “한 달 뒤 조 대사대리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며 “오늘 아침에 북한대사관에 전화했더니 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했고 그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더라”고 전했다. 또 “조 대사대리가 잘 웃거나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다”며 “자녀 (2명의) 교육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5일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의 공식 연회에서 조 대사대리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발렌티노 페린 전 의원은 조 대사대리가 자신의 인민과 조국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은 한때 북한 외교관들에겐 선망의 지역이었다. 2000년대 들어 서유럽에서 이탈리아와 가장 빨리 수교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좋았다.
그러나 2016년 2월 김춘국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가 현지에서 간암으로 사망했고 2017년 8월 부임한 후임 문정남 대사는 6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 차원에서 추방됐다. 조 대사대리마저 잠적하면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은 3번 연속 대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2017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된 이탈리아는 대북제재위원회 의장국으로 강력한 대북 제재를 주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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