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레이더 조준 논란과 관련해 일본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영상을 8개 언어로 전파하기로 하면서 ‘레이더 갈등’이 점차 한일이 서로 물러서기 어려운 ‘치킨게임’ 양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불거진 과거사 갈등이 군사 분야로까지 번지면서 한일관계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6일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는 일본의 입장을 반박하는 영상에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자막을 입혀 유튜브에 게재하기 위해 번역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4일 한국어와 영어 자막으로 제작한 4분 27초 분량의 영상을 게재한 데 이어 추가로 6개 언어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배포하겠다는 것. 일본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 여론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다.
국방부가 제작한 이 동영상은 지난해 12월 20일 광개토대왕함이 표류 중인 북한 어선에 대한 구조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본 초계기에 추적레이더를 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당시 일본 초계기가 위협 저공비행을 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이날 국방부의 반박 영상에 대해 “일본의 입장과는 다른 주장이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방위성은 “광개토대왕함의 초계기에 대한 화기관제(추적) 레이더 조사는 예측 불가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로 매우 유감”이라며 “향후 한일 방위당국 간 필요한 협의를 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정면 맞대응을 피한 채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레이더 갈등이 한일 군사당국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국제 여론전으로 비화되면서 이번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6일 강제징용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직접 이번 사안을 언급할 경우 한일관계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레이더 논란은 양국 군 당국이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며 “양국 군 당국 실무진끼리는 해결하자는 의지가 있지만 양측 국가 지도자들이 이번 사안에 대해 사실상 직접 대응하는 국면”이라고 했다.
특히 군 내부에선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휘청거리던 한일 간 안보협력이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관계는 북한을 압박할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갈등 국면은 북한이 박수치며 좋아할 상황”이라고 했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11월 체결한 GSOMIA는 한반도 유사시 한층 신속한 군사적 대응을 위해 북핵 및 미사일 동향 등 대북 군사정보를 비롯한 군사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청와대는 GSOMIA 연장에 부정적이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아직 여전하다는 점을 들어 지난해 8월 이 협정을 1년 연장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GSOMIA는 한일 양국이 서로가 필요해 어렵사리 맺은 협정인 만큼 양국 모두 GSOMIA까지 건드리는 부담을 지려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본 정부 입장에선 보수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끌어안을 꽃놀이패가 될 수 있는 만큼 갈등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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