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해 조금만 부정적으로 이야기해도 반발했고, 군인 같은 성향을 갖고 있는 완전한 공산주의자였다.”
안토니오 라치 전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조 대사대리가 잠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외부 인사인 그는 “조 대사대리가 당시 다음 주에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베네치아로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 대사대리의) 잠적 소식을 듣고 더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4일과 5일 동아일보와 두 차례 진행된 단독 전화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29일 만났을 때 내가 ‘당신의 이탈리아에서의 아름다운 인생은 끝났네’라고 농담하자 조 대사대리는 ‘그래서 가기 전에 가족들에게 이탈리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 소속인 라치 전 의원은 이탈리아 내에서 북한에 우호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북한 국경일에 대사관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초청받아서 방문했던 그는 조 대사대리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이 만난 날부터 바로 일주일 뒤인 지난해 11월 초 조 대사대리가 잠적했다. 라치 전 의원의 증언대로라면 평양 복귀 전 가족여행을 가장하는 치밀한 준비를 통해 탈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라치 전 의원은 “이탈리아 사업가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으로 조 대사대리와 통화를 한 번 더 했다”며 “평양 복귀 전 그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먹여 보내기 위해 11월 둘째 주쯤에 만나려고 연락했는데, 그때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라치 전 의원은 “최근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는데,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식사나 행사 자리에도 가끔 빠져 내가 ‘이 사람 왜 이래’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 식사 때는 잘 웃지도 않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가 곧 이탈리아를 떠나야 한다는 점이 슬퍼서 그런가 보다 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조 대사대리의 잠적 과정을 재구성한 5일자 지면에서 “이탈리아 외교부는 그가 사라진 사실을 정보당국에 통보했고 정보당국은 제3국으로 도피해 은신해 있던 그를 찾아내 다시 이탈리아에 데리고 왔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제3국이 어디인지, 그렇게 추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또 그의 잠적을 인지한 북한 당국이 특수요원들을 로마에 긴급 파견했지만 체포에는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라치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22일 다른 북한대사관 직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조 대사대리의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주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는 “북한과 이탈리아 사이에 (대북 제재로) 경제적 교류는 있을 수 없고 문화적 교류가 거의 유일한 일”이라며 “도로나 철도, 고가품과 관련된 이탈리아 사업가들이 북한에 투자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북한으로 가져갈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2017년 10월 문정남 대사 추방 이후에는 뭔가 북한대사관에 물어볼 때마다 ‘평양에 다시 물어봐야 한다’고 말해 ‘그 정도 답도 못 할 거면 대체 당신들은 왜 여기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이 최고 지도자 사치품 공급 통로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조 대사대리에게 몬테풀차노 다브루초의 고가 와인을 건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파티 때 쓰라고 건네주라’라고 하자 ‘안 된다’며 받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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