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을 쏟아내며 무역전쟁을 벌여 오던 미국과 중국이 7일 중국 베이징에서 본격적인 무역 협상에 돌입했다. 양국이 합의한 90일간의 휴전 시한(3월 1일)을 앞두고 실무 협상팀이 처음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는 자리다. 경제 문제 외에도 세계 패권을 다투는 양국의 정치, 사회, 외교적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시한 내에 절충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 “중국이 해결 원한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자신감
8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는 차관급 협상에 미국 측에서는 제프리 게리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재무부, 농무부, 국무부 및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담당자들이 참여한다. 중국 측은 왕서우원(王受文) 상무부 부부장을 비롯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정부 등 부부장급이 포진했다. 베이징청년보는 이날 오전 미국 국기와 대사관 번호판을 단 차량 약 10대가 상무부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다며 “중국과 대화가 잘되고 있고 중국이 협상 타결을 원한다”고 낙관했다. ‘중국이 미국에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압박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 지도부는 ‘기술 강제 이전’ 등 미국의 핵심 요구에 “근거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시 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은 최근 미국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에는 외국 기업의 기술 이전을 강제하는 국가 정책이 없다.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기술을 자본처럼 투자해 수익을 얻었다면 그 기술은 투자 요소이기에 이를 강제 이전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인식 차이가 큰 만큼 향후 두 달 안에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7일 “중국이 백기를 들고 싶다면 일찌감치 들었고 미국의 관세 부과에 결연한 보복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역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중국 화웨이도 이날 데이터센터용 등 자체 상표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풀이했다. ○ 까다로운 7대 협상 과제
블룸버그는 이번 협상의 7대 핵심 사안으로 △지식재산권 △화웨이와 5세대(G) △중국제조 2025 △에너지 △농산물 수입 △자동차 관세 △은행 시장 개방을 꼽았다.
이 외에 남중국해, 북한, 대만 등 양국 간 정치 외교 현안들이 보이지 않는 협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 군함이 남중국해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西沙 군도) 인근 해역에 진입했다며 “미 군함에 즉시 떠나라고 경고했다”고 날을 세웠다. 투신취안(屠新泉) 대외경제무역대 교수는 “이번 협상은 기술적인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자리”라며 “관세 문제 최종 타결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 정부도 협상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인식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중국 정부는 영국 다이슨의 헤어드라이어 모조품을 대량으로 제작한 일당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에서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가 핵심 의제인 것을 감안해 중국이 자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노력을 부각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왕 부주석은 22∼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미중 무역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시 주석의 경제 책사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도 이달 중 방미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회동하여 무역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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