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부시 대통령 장례식서 EU대사, 150국중 마지막 호명
사전통보도 없이 노골적 홀대
美국무부 “의전 정리 차원” 해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12월 아무런 통보 없이 유럽연합(EU)의 외교적 지위를 대폭 격하시켜 논란을 빚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을 주창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다자주의와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EU를 줄곧 비판해 왔고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노골적으로 찬성하며 EU와 갈등을 빚었다.
독일 도이체벨레 방송은 8일(현지 시간) 아일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오설리번 미 워싱턴 주재 EU 대표부 대사가 지난해 12월 5일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해서야 EU의 외교적 지위가 강등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보도했다.
외교 의전 및 관례에 따르면 미 정부 공식 행사에서 각국 대사의 호명 순서는 주미대사직을 맡은 기간에 따라 정해진다. 즉 1997년부터 장례식 때까지 무려 21년간 대사직을 수행 중이었던 팔라우 대사가 약 150명의 각국 주미대사 중 가장 먼저 불려야 한다. 또 2014년 11월부터 주미대사를 맡은 오설리번 대사는 27번째로 불려야 합당하다.
하지만 이날 장례식에서 그는 150개 국가 대사 중 꼴찌로 이름이 불렸다. 심지어 이달 말 열리는 미 국무부 행사에서도 EU 대사가 제외됐다. 누가 봐도 노골적 홀대임이 분명한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버락 오바마 정권 때와 대조적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9월 EU를 개별 국가와 같은 등급으로 격상시킨 바 있다.
미 국무부는 뒤늦게 “우리가 EU에 통보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 의전 프로토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군색한 변명을 내놨다. 하지만 마야 코치얀치치 EU 대변인은 “우리는 사전에 어떤 사실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 EU 외교관도 “의전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동기에 따른 행위임이 명확하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이와 관련해 미 뉴욕타임스(NYT)는 EU의 강력한 항의로 EU 대표부에 대한 미 행정부의 외교 지위 격하 조치가 일시적으로 번복됐지만 향후 어떤 지위를 부여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실제 미 고위 인사들은 EU의 존재 가치를 폄훼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EU가 각 회원국 및 해당 국민의 이익보다 브뤼셀 관료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또한 지난해 7월 “무역 측면에서 EU는 미국의 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정부는 현재 미-EU 간 무역수지 불균형을 이유로 EU산 자동차 수입 관세를 대폭 올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EU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집행위원은 이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워싱턴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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