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밴드 퀸에 대한 영화가 인기죠? 저는 고등학생 때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청계천에서 퀸의 불법 복제 음반들을 사 모았던 퀸의 광팬입니다. ‘빽판’(해적판)들을 보물처럼 모시면서 노래들을 외웠는데요. 우리 청소년들도 영화를 계기로 퀸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퀸의 대표곡은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죠. 발라드와 록과 오페라를 맛깔나게 버무려 놓은 전무후무한 명곡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사를 정리해 보면 ‘삶이란 산사태에 쓸려가듯 바람에 날려가듯 결국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진행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노래의 주인공은 삶이 어떻게 되든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상관하지 않겠다며 삶을 이솝 우화의 ‘신 포도’(포도가 높이 매달려 따먹지 못하자 ‘시어서 맛이 없을 것’이라며 포기하는 자기 합리화의 다른 표현)로 만들죠. 하지만 노래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속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실수로 살인을 저질러 처형당하게 된 주인공은 겁에 질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겁쟁이라고(Scaramouche), 살아남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갈릴레오라고 자학하다가도, 신(Bismillah)에게 제발 악마(Beelzebub)로부터 구해달라고 애걸합니다.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빠져나가겠다고 다짐도 하죠. 그 유명한 오페라 부분의 가사는 이렇게 온탕, 냉탕을 오가는 마음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녹음하는 데만 70시간이 걸렸다고 하죠.
저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무리 노력해도 늘 엉망진창이 되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그래도 살아남아서 한번 잘 살아 보겠다는 ‘희망’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 이길지의 결정은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냥 듣고, 노래가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판단하라고.
이 노래는 메리(Mama, Mamamia)라는 여성과 동거하던 머큐리가 남자와 사랑에 빠지며 겪은 심적 혼란을 그려낸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1970년대에 동성애는 큰 죄악이었죠. 그 시대에 죽은 것과 다름없이 이성애자로 살 것이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더라도 사는 것처럼 살아볼 것이냐를 고민하는 노래라는 것이죠.
결국 머큐리는 자신의 본모습인 동성애자로 살기로 결정합니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든 상관없다던 말은 너무 힘들어서 내뱉었던 푸념이었던 것이죠. 삶을 신 포도로 만들 수 있는 존재들은 신선들 아니면 바보들이고, 대부분의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한 번만이라도 잘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도록 프로그램된 존재들이니까요.
새해입니다. 올해도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한 해일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겠다고, 잘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을 칠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면 축복이죠. 그런 축복을 받지 못했거나, 그 복음을 믿을 수 없는 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살아남으려면, 덤으로 잘 살기까지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실존적 존재’가 돼야 합니다. 결국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자유롭게, 대신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자기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죠. 남들에게 맞춰 살지 말고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겠죠? 삶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니까요(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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