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예지]일본의 세계 공통 리걸 마인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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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사회부 기자
김예지 사회부 기자
“리걸 마인드(legal mind)는 세계 공통 언어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최고위급 A 법관이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로부터 받은 연하장의 마지막 문구다. ‘새해 덕담 끝에 뜬금없이 법률적 사고방식이나 감각을 뜻하는 리걸 마인드라니….’ 연하장을 읽던 A 법관은 황당했다고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법원의 대법관이다.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30년 가까이 연하장을 주고받았지만 통상적인 새해 인사 외에 다른 메시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최고 직위의 법률가끼리 주고받는 연하장에 법학 입문자들에게 강조하면 적절한 리걸 마인드를 언급한 것은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연하장 내용을 전해 들은 판사들은 대체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확정 판결 이후 냉랭해진 일본 법조계의 반응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회의에 해외에서 34개국 헌법재판기관의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는데 일본 법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법조계에서는 “일본 측이 초청에 응하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취소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당시는 한국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강제징용 판결 지연에 개입한 의혹을 수사하던 때였다.

이후 한 달쯤 지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2003년 10월 판결과는 정반대로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 판결 이후 확정 판결을 미루다가 검찰이 재판 지연 의혹 수사에 나서자 6년 5개월 만에 배상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우리 사법부가 이렇게 시간을 끈 배경을 놓고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한 정부의 외교적 판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가 ‘한국은 세계 공통의 리걸 마인드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연하장을 보내는 게 타당한 일일까. 특히 우리가 수용할 만한 법적 근거가 있나.

2012년 5월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배상을 처음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일본 법원은 국제사법적 관점에서 결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일본법을 적용하였다’는 문구가 있다. 일본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일본인으로, 피해자가 거주한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일부로 보고 판단을 내렸다고 본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대법원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뒤집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본이 국제사법적이지 않다’는 그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국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는 각자 법 논리에 따라 180도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렇더라도 30년 친분을 해치는 일방적인 감정 표현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런다고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일본이 원하는 쪽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 공통의 리걸 마인드’와도 거리가 멀다.
 
김예지 사회부 기자 yeji@donga.com
#리걸 마인드#강제징용 피해자#전범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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