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연일 대일 메시지를 발신하며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 총리는 12일 서울 강북구 수유리 애국선열묘역에 있는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를 참배한 뒤 “일본이 지도국가에 걸맞은 존경과 신뢰를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며 지도국가로 발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했다”고 한 뒤 “그 상처가 피해 당사자의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 사실 앞에 일본은 겸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레이더 문제에 도를 넘은 공세를 펼친다고 보고,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되,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며 “일본은 과거 앞에 겸허하고, 한국은 미래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설정을 위해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현실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날 참배에는 손병희 선생의 외증손인 정유헌 씨, 임종선 민족대표 33인 유족회장, 김재옥 민족대표 33인 기념사업회장, 손윤 손병희선생 기념사업회장, 채홍호 3·1운동 100주년 추진단장,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 등이 함께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이 총리는 최근 들어 사실상 정부의 한일관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 당시에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정부 대표 자격으로 발표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대일관계 전반에 대해 상당한 역할을 위임받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총리가 이날 손병희 선생 묘역을 찾은 것은 일단 단호한 대일 기조를 이어가면서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을 유도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손 선생은 천도교 3대 교주를 지내며 민족대표 33인으로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식을 주도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3억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수유리 묘역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는 국립법 개정안의 통과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정치권의 대표적인 지일파인 이 총리가 전면에 나서면서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고 한일 간 소통의 기회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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