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끝까지 거친 질문 당부했던 오바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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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이 장면을 문재인 정부에서, 그것도 벌써 꺼내보게 될 줄은 몰랐다.

2년 전인 2017년 1월 18일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내 기자실. 이틀 뒤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러 들어섰다. 밝지만 엄숙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권력과 언론) 관계의 핵심이다. 여러분은 대통령인 나에게 아첨꾼이면 안 된다(You’re not supposed to be sycophants). 회의론자(skeptics)여야 한다. 나에게 거친 질문(tough questions)을 던져야 한다. 사정 봐주고 칭찬(complimentary)해도 안 된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져야 막강한 권한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우리도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기자실이 술렁였다.

“그런 당신들이 있어서 우리가 더 솔직해지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가령 이런 거다. 여러분이 2014년 에볼라 사태 당시 ‘왜 아직까지 퇴치하지 못하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나는 이를 근거로 백악관 참모들에게 ‘다음 회견 전에 (저런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해결하라’고 다그칠 수 있었다.”

박수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민주주의는 여러분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서 백악관을, 미국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위해 보여준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I want to thank you all for your extraordinary service to our democracy).”

그러고는 다시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일부 기자들은 만감이 교차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이 장면이 다시 떠오른 것은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회견 중 김예령 기자의 질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김 기자가 “기조를 바꾸지 않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라고 질문하자 문 대통령이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싸가지 문제보다 실력 부족의 문제”라고,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술 한잔 먹고 푸념할 때 하는 얘기”라고 했다.

오바마라고 집권 8년 동안 기자들로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싸가지 있는’ 말과 질문만 들었을까. 2014년 8월 당시 최대 골칫거리였던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논의하러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한 뒤 회견장에 베이지색 양복을 입고 나서자 기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나약해 보인다”며 옷차림까지 물고 늘어졌다. 2015년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뒤 회견장에 나섰지만 기자들은 미일 관계는 뒷전인 채 당시 터진 볼티모어 소요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한 대처를 집중 질타했다. 그래도 오바마는 질문에 충실히 답했다. 마지막 회견을 한 날 오바마 지지율은 퇴임을 앞둔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인 60%였다.

집권세력이 불쾌해했다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언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런 일이 생긴 뒤엔 위축될 수 있다. 대통령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라 질문할 때 머뭇거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분명한 건, 그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오바마#문재인#대통령 신년회견#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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