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디서나 남녀 공용 화장실이 흔한 풍경이었다. 그마저도 몇몇은 급히 설치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계단 밑 좁은 공간에 간신히 만든 화장실이다. 키가 큰 나는 몸을 완전히 굽혀야 겨우 일을 볼 수 있었다. 휴지도 식당 카운터에서 몇 칸을 미리 떼서 가져가야 했다. 한때 살았던 경기 파주시는 당시 변기가 주로 재래식이고 양식 변기를 공공장소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요즘 한국은 ‘화장실 가기 좋은 나라’다. 어디에나 공중화장실이 있고 깨끗하다. 외국에서는 공중화장실 자체를 보기 힘들거나 문명인이 쓰기에 부적합할 만큼 열악할 때가 많다. 네덜란드에서는 돈을 내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에서는 국제 관광객을 위한 공중화장실이 여럿 만들어졌다. 수원의 어떤 사람은 화장실 박물관을 세워 ‘미스터 토일릿(화장실)’이란 별명도 붙었다. 2013년 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사촌들과 그 박물관에 가서 특별한 변소 시설도 체험했다.
2016년 5월에 있었던 끔찍한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에 남녀 공용 화장실은 찾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일부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며칠 전 무심코 남녀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게 됐다. 여성 전용 칸막이 너머로 남성 소변기가 있었다. 그 칸막이를 지나가는 순간에 안에 있는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다 나를 보고 “헉” 하며 움찔했다. 그녀는 손도 씻지 않고 재빨리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얼마 전 이용한 남자 화장실에는 대변 공간이 2개 있었다. 하나는 사용 중이었고, 하나는 장애인용 겸 유아용이었다. 아무도 없길래 나는 장애인용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옷걸이가 없어서 코트와 가방을 유아용 붙박이 의자 위에 놓고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몇 분 뒤 일을 마치고 나왔을 때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남자를 봤다. 그는 품에 아기를 안고 있었다. 나와 마주친 그의 표정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도 사건이 있었다.
친구가 선물해 준 모자를 쓰고 법률사무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게 꼬리가 달려 주변의 이목을 끌 만한 모자였다. 그때 갑자기 장에서 신호가 왔다.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에서 통신이 온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미술관은 물품을 보관할 사물함도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코트와 가방을 급하게 넣고 남자 화장실에 갔지만 두 칸 모두 사용 중이었다. 장애인용 화장실을 찾아봤는데 없었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그 옆 여자 화장실은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큰 실수’를 하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볼일을 보는 중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나오셔야 돼요!” 속으로 ‘들켰구나’ 생각했다. 나와서 보니 경비원과 청소원, 미술관 여직원이 앞에 서 있었다. 경비원은 “여기는 여자 화장실”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한국말로 “남자 화장실이 모두 사용 중인데 너무나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비원은 “2층에 남자 화장실이 또 있다”며 나를 야단쳤다. 옆에 있던 여직원은 “휴대전화를 검사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 나를 ‘몰래카메라 범죄인’으로 의심한 것이었다. 다행히 내 휴대전화가 사물함에 있는 걸 보여주자 나를 풀어줬다. 경비원은 재차 내게 “앞으로는 1층 화장실에 사람이 모두 찼을 땐 2층 화장실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사과한 뒤 그 자리를 떠났다. 동시에 적어도 ‘더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살며 그 일이 벌어졌던 서울 정동길 근처를 지나가면 그때 생각이 날 것 같다. 혹시라도 다시 그 미술관에 들어갔을 때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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