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약학대학 신설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신설 약대를 선정하기 위한 협의회를 구성 중”이라며 “심사 절차를 고려했을 때 다음 달 하순경 2개 대학을 선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원 규모가 60명임을 감안하면 신설되는 약대의 정원은 대학당 30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교육부에 약대 신설을 신청한 대학은 고신대, 광주대, 군산대, 대구한의대, 동아대, 부경대, 상지대, 을지대, 전북대, 제주대, 한림대, 호서대 등 12곳이다.
약대 2곳을 신설하면 전국 약대는 37곳으로 늘어난다. 입학정원도 1693명에서 1753명이 된다.
○ 지방대 육성과 산업 약사 양성이 목표
교육부는 약대 신설 이유로 “미래 성장 동력인 제약산업 및 임상연구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전문 연구인력의 안정적 확보”를 들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9월 교육부에 약대 입학정원 60명 증원을 요청하면서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교육부는 배정 기준 3가지도 제시했다. 첫째, 지방대 경쟁력 강화 및 약대 정원의 형평성을 고려해 비수도권 대학으로 한정해 배정한다. 둘째, 제약연구 및 임상약학 분야의 인력 양성을 위한 특화교육과정 운영을 살펴본다. 셋째, 신설 약대의 제약·연구약사 양성 등 임상연구 중심의 특성화 선도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는 적합성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약대 신설 목표와 방향성을 볼 때 약대 신설은 지방대 육성을 통한 국가균형개발과 산업약사 양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방대 육성과 국가균형개발은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거점 국립대를 비롯한 지방대를 서울 주요 대학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 국가균형개발의 일환
교육부가 약대를 지방대에 배정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생존의 기로에 놓인 지방대를 살리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있다. 지방대는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고사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2023년 38개 대학이 폐교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문제는 지방대의 위기가 국가균형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국가균형발전은 현 정부가 5대 주요 국정 목표 중 하나로 제시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의 구체적인 정책 목표다. 하지만 지방대가 무너지면 국가균형개발은 힘들어진다. 상당수 지방도시에서 대학은 이미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지역 대학인 서남대와 한중대가 폐교한 전북 남원시와 강원 동해시가 단적인 예다. 이들 도시는 대학 폐교로 인해 젊은 인구가 유출되고 대학이 있었던 지역 주민들이 생계 터전을 잃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방 중소도시에 불과한 남원시와 동해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 신설 약대, 거점 국립대 활용 정책과 맞물려야
정부는 ‘대학이 무너지면 지방이 무너진다’라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대학을 활용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신설 약대를 지방대에 배정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교육계에서는 지방대 약대 신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가 2018년부터 시행 중인 ‘혁신도시 시즌2’ 정책과 호응할 수 있도록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주목받고 있다. ‘혁신도시 시즌2’는 혁신도시가 정주기능을 갖추고 창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거점 국립대에 많은 역할을 요구하면서 혁신도시 안에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정책 극대화 논리에는 “역량 있는 대학을 선정해 지역 소멸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발전까지 이끌 수 있도록 대학을 키워야 한다”는 배경이 있다.
○ 대학 역량도 중요
대학 역량은 신설 약대 선정 기준에도 들어있는 ‘제약 연구 및 임상약학 특화교육과정’ 및 ‘임상약사 중심의 특성화 선도 모델’과도 연관돼 있다. 산업현장에 특화한 산업약사와 임상약사 양성에는 많은 투자와 교육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학계가 2009년 15개 약대 신설 당시 대학당 정원을 20∼25명씩 배정한 것을 두고 비판했던 이유는 약학 교육에 필요한 ‘규모의 경제’를 무시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약대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수준 높은 교수 요원을 25명 정도는 확보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과 선진국형 약사 교육이 가능한 만큼 학생 수가 50명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융복합 교육 환경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약대 교수는 “산업약사와 임상약사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실습약국, 제약공장, 약초원이 꼭 필요하다”며 “대학 내 병원을 통한 임상실습과 다양한 학내 인프라를 활용하는 융복합 교육 환경도 질 좋은 약사를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약학계에서는 의대와 약대의 협력 교육을 실현해 제조기능에 치우친 약사의 직능을 환자 진료에 약사의 전문성이 기여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태도로 창업 등에 나설 수 있는 미래형 약사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약학 교육 인프라 갖춰야 산업에 기여 가능
예상보다 제약·바이오산업의 빠른 성장세도 약학 교육 인프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요소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바이오시밀러를 앞세워 세계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작년 셀트리온은 미국과 유럽에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인 램시마, 트룩시마, 허쥬마에 대한 판매 허가를 얻어 연간 25조 원 시장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복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22년까지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28개의 누적 특허 만료와 미국과 유럽에서 64개 바이오시밀러 품목 허가가 예상됨에 따라 연간 417억 달러까지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성패는 산업약사 등 질 높은 연구 인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약학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개업약사 쏠림으로 현장에서 필요한 약사를 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인진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약사 인력 풀이 부족해 신약 개발, 임상시험에 필요한 전문 약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에서 개업 중인 한 중견 약사도 “학생들이 질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 선택지를 넓힐 수 있어 개업약사 편중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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