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시인(52)은 스스로를 ‘무심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라 읽는다. 시도 그를 닮아 빛보다 어둠이 많이 서려 있다. 하지만 최근 펴낸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마음의숲·사진)는 살짝 결이 다르다.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정하고 명랑하게 썼다. 지인들이 ‘네가 쓴 글이 맞느냐’고 할 정도”라고 했다.
“2014년 이후 3년간 자유롭게 쓴 글과 칼럼을 모아 엮었어요. 비극과 부정성에 대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살아왔는데, 이 시기에 정신과 문학을 재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저 자신은 싹 지우고 직접 경험한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기록했습니다.”
글쟁이로 살아온 지 20여 년. 기존 분위기를 떨치기란 쉽지 않았다. 새삼 육하원칙을 되새기며 덜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는 “담백한 문장은 전달력이 약한 것 같아 망설여졌다. ‘네가 정말 똑똑해지면 쉬운 글을 쓸 것’이란 대학 시절 은사의 말씀이 자주 떠올랐다”고 했다.
“문체도 문체지만 해석하고픈 욕망을 멈추느라 힘들었어요.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정황만 전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예컨대 병원에서 겪은 의사의 태도나 식당에서 엿본 상사와 부하의 대화는 관찰 기록에 가깝죠. 용기를 내서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긴 겁니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년)를 시작으로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년), ‘눈물이라는 뼈’(2009년), ‘수학자의 아침’(2013년)을 냈다. 특히 산문집 ‘마음사전’(2008년)과 ‘시옷의 세계’(2012년), ‘한 글자 사전’(2018년)으로 두꺼운 팬 층을 형성했다.
“오래도록 쓰고 싶어서 산문과 시를 함께 씁니다. 각각 필요한 근육이 달라서 균형감각 유지에 도움이 되거든요. 시가 갱을 뚫는 고된 작업이라면, 산문은 심층까지 가지 않고도 할 말을 펼쳐 보이는 즐거움이 있지요.”
‘시대를 향한 응전력(應戰力·전쟁 등에 대응하는 힘)이 있는 시인이 되자’고 20대 시절 자주 다짐했다. 응전력은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중심축 중 하나다. 그는 “패턴을 읽는 능력은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응전력을 잃지 않되 거시적 관점으로 시를 써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까마득한 후배 시인과 독립서점을 팔로잉한 뒤 그들의 활동을 ‘구경한다’”며 “재미있고 공격적으로 문학하는 후배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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