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등 대기업 대표들과 중견기업 대표,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 등 130여 명의 기업인들을 만났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 대표들과 회동한 것은 2017년 7월 청와대 호프미팅 후 1년 반 만이다. 7일 중소·벤처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 이어 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혁신을 당부하면서 정부도 올해 20조 원이 넘는 연구개발 예산과 규제 혁신을 통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어제 간담회는 사전 각본 없이 자유토론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130여 명이 2시간 동안 실질적이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에 관심을 갖고 기업인들을 만나 격려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나머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장관들의 몫이다.
1년 반 전에도 문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만나 호프미팅을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지만 그 결과가 뭔가. 기업인들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 혁신, 현장에 부족한 전문인력 양성 등 많은 제언을 했지만 지금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게 없다. 이래서야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100번 만난들 서로 덕담만 주고받다 끝날 뿐이다.
기업인들은 “대통령이 아무리 혁신성장을 외쳐도 정작 현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당 강경파들을 비롯한 국회가 개혁 법안 통과를 막고, 공무원들은 법 개정 없이 할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안 하고 미적거리니 경제가 나아질 턱이 없다. 오죽하면 어제 한 기업인이 “공무원이 규제를 왜 유지해야 하는지 입증하게 하고, 입증에 실패하면 자동 폐지하도록 하자”는 방안까지 내놨을까.
올해 경제 상황은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만나 말잔치나 할 만큼 녹록지 않다. 14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에서 한국은 20개월 연속 내리막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나 다름없다.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대화가 생산적 결과로 이어지려면 화두만 던질 게 아니라 혁신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내놔야 한다. 장관들은 이 액션플랜으로 현장 공무원들이 대(對)기업 서비스에 나설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는 규제개혁과 혁신성장의 진행과정을 수시로 체크해 대통령과 국민에게 보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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