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랙터 운전 중 전복 사고로 오른쪽 눈 시력의 100%, 왼쪽 눈 시력의 97%를 잃었다는 진단을 받은 A 씨. 바로 눈앞의 손가락 개수를 못 셀 정도의 ‘실명(失明)’ 상태(장해지급률 85%)가 인정돼 무려 2억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하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는 보행이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라던 그는 보험금을 받은 뒤 멀쩡히 차를 몰고 다녔다. 그러던 중 또 교통사고를 내 1700만 원의 자동차 보험금을 타냈다.
#2. 크레인 현장 관리자 B 씨는 적재함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척수손상 및 요추 1번 골절’ 진단을 받은 B 씨는 이동, 음식물 섭취, 배변·배뇨, 목욕, 옷 입고 벗기 등 기본적인 5가지 활동조차 어렵다는 ‘일상생활 기본동작 제한’과 ‘양측 하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평생 다른 사람의 수발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 7개 보험사는 B 씨에게 10억1000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밥도 혼자 못 먹는다던 B 씨는 장해 진단을 받은 지 두 달도 채 안 돼 유유히 운전대를 잡았다. 이어 4차례나 교통사고를 내 1900만 원의 보험금을 더 챙겼다.
‘치매’, ‘실명’, ‘하지마비’ 등의 허위·과다 장해 진단으로 보험금을 수령하는 보험사기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6일 이 같은 보험사기 혐의자 18명을 적발해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은 한 사람당 평균 3.4건의 보험계약을 갖고 있었으며, 3억1000만 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이들은 마비 및 척추장해 진단을 받으면 받을 수 있는 보험금 규모가 크다는 점을 노렸다. 또 장해평가 시점, 의사의 의학적 소견 등에 따라 장해 정도가 고무줄처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이용했다. 보험사들은 상해 또는 질병으로 인해 신체에 생긴 영구적인 손상 정도를 판정해 ‘장해 분류표’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의사가 공모하거나, 브로커가 끼어서 장해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면 보험사가 이를 일일이 적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험연구원 김규동 연구위원은 “보험사가 의료기관 전문의들과 자문 제도를 운영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사기를 완전히 막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보험사기대응단 정관성 팀장은 “보험사기를 작심하고 장해를 입은 것처럼 연기를 해 의사까지 속이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10년간 사지마비 환자인 것처럼 연기를 해 보험금 4억7000만 원을 챙긴 여성이 적발됐다. 그는 2007년에 사고를 당한 뒤 10여 년간 14곳의 병원을 옮겨 다니며 온몸이 마비 상태인 것처럼 행동했고 의사까지 감쪽같이 속였다. 하지만 21억 원의 보험금을 추가 청구했던 그가 화장실에 멀쩡히 걸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지인이 이를 제보하면서 사기 행각이 덜미를 잡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면 피해를 보는 것은 선량한 가입자들”이라며 “보험사기에 따른 보험금 누수는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편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은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한방병원의 불필요한 장기 치료 때문에 보험료가 매년 상승하고 있고 병원 등의 과잉 진료도 만만치 않다”며 “관계부처와 협의해 이를 방지하는 법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