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합의안 부결후 시나리오
메이, 강경파 달래기 ‘플랜B’ 제시… 보수-노동당 동시만족 쉽지 않아
EU, 기존 합의안 대폭수정 난색… 모든 시도 실패땐 ‘합의 없는 이혼’
영국 하원이 15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을 큰 표 차로 부결시키자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더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사진과 함께 ‘역사적 패배’ ‘완전한 굴욕’ 등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브렉시트(Brexit)와 멸종(extinct)을 합친 조어인 브렉팅트(Brextinct)라는 말도 등장했다.
메이 총리와 여당 지도부는 꽤 복잡한 시나리오를 짜야 할 처지다. 현재 논의되는 시나리오는 △총리 불신임 투표 및 조기 총선 △의회 재협상 △EU와 추가 협상 △2차 국민투표 및 EU 잔류 △노딜 브렉시트 등 크게 5가지다. 문제는 어떤 상황이라도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① 메이 총리 불신임 및 조기 총선
우선 먼저 넘어야 할 산은 16일 불신임 투표다.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메이 총리가 사퇴하고 2주 내 새 내각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자칫 야당인 노동당에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많은 보수당 의원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을 싫어하지만 노동당에 정부를 내주는 것에는 더 관심이 없다”며 조기 총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② 의회 재협상
메이 총리는 불신임 위기를 넘기면 각 당 지도부를 만날 계획이다. 이를 염두에 둔 ‘플랜B’는 의회 제출 시한인 21일 이전에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에서의 통행 및 통관 자유 문제를 둘러싼 혼란 방지용 ‘백스톱(안전장치)’ 조항 수정 여부가 재협상 쟁점이다.
EU에서 탈퇴하더라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으로 남아 EU와 경제협력을 유지하는 소위 ‘노르웨이 모델’(자국 통화를 사용하되 EU 경제공동체에 잔류)도 거론된다. 백스톱을 반대하는 보수당 강경파는 노르웨이 모델에도 부정적이다. EU 회원국 국민이 영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브렉시트가 무의미해진다는 이유에서다.
③ EU와 추가 협상
영국 정부는 EU와의 추가 협상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안에 반대한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 등은 줄곧 재협상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EU 역시 “재협상은 없다”고 맞선다. 파장을 줄이려는 차원에서 3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행일을 연기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가디언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되면 EU가 브렉시트 시기를 최소 7월까지 미루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④ 2차 국민투표 및 EU 잔류
야당인 노동당은 브렉시트 자체를 재검토하자는 ‘2차 국민투표’안을 주장한다. 12일 인디펜던트의 조사에 따르면 2차 국민투표 찬성률이 46%로 반대(28%)보다 18%포인트 높았다. 2차 국민투표가 치러지면 3년 전 투표 결론이 뒤집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메이 총리는 “재투표는 나라를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며 수용 불가 방침을 밝혔다. EU 탈퇴가 약 10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재투표로 브렉시트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U는 이번 부결로 영국의 EU 잔류, ‘노(No) 브렉시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EU 의회 상임의장은 트위터에 “아무도 노딜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는다면 유일한 긍정적 해결책이 무엇인지 용기를 내서 말해야 한다”며 EU 잔류 지지 의사를 밝혔다.
⑤노딜 브렉시트
①∼④가 모두 실패하면 협상 없이 곧바로 EU를 탈퇴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선택해야 한다. 이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은 ‘노딜 브렉시트로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8% 줄고, 실업률은 7.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 역시 “노딜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은 핵폭탄급”이라고 예측했다. 영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겠지만 이번 투표가 큰 표 차로 부결된 데다 시간이 촉박해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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