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좋은 뜻인데 잘못 알려진 말이 제법 있는데 표변(豹變)도 그중에 하나다. 사람이 태도를 갑자기 바꿔 좋지 않다는 나쁜 뜻으로 주로 쓰인다. 원래는 계절이 바뀌면 표범이 털을 갈 듯이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면 이를 확 바꾸는 게 군자의 태도라는 말이다. 주역의 군자표변(君子豹變)에서 나온 말이다. 새해가 되자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태도가 표변한 것일까.
일단 겉으로 보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경제 35번, 성장 29번, 혁신 21번을 언급하면서 경제에서 실적을 올리도록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5일에는 5대 그룹 총수를 포함해 130명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앞서 7일에는 중소·벤처기업인들과도 만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16일 경제단체장을 만난 데 이어 17일에는 소상공인연합회를 별도로 찾아가 현장소통 간담회를 가졌다.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올 들어 부총리 말고도 대통령을 2번이나 만났다. 과거 대통령과 장차관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자주 경제인들과 대화의 자리를 가진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정말 대통령이 달라졌을까. 대통령의 기업인 간담회 전날 법무부는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후속조치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를 비롯해 재계가 수없이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던 핵심 현안들이었다. 간담회 때마다 나온 최저임금의 업종별 지역별 차등 적용 현장 건의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방안을 만들기 어렵다”는 거부 답변만 번번이 돌아왔다. 신년사에서도 언제까지 효과가 날지 모르는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촛불처럼 인내하면서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혔다.
효과 미지수 사업 밀어붙이기의 대표적인 정책 사례 가운데 하나가 한창 정부와 서울시가 열을 올리고 있는 제로페이다. 이 사업 홍보를 위해 중소벤처기업부는 작년 29억 원, 서울시는 30억 원을 들였다. 그럼에도 시범사업 시작일인 작년 12월 20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총 1607건. 하루 평균 107건인데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올해도 중기부 60억 원, 서울시 38억 원의 예산을 잡아놓고 있다. 자영업자들을 위해 우리가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정책 홍보 차원이라면 모를까, 이용자 불편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나아질 게 없다는 게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무리 경제는 심리라고는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투자요, 일자리다. 경제 살리기의 효과를 거두려면 잘못된 정책은 하루빨리 접고 표범이 털을 갈듯 새로운 정책으로 갈아타야 한다. 보여주기 간담회를 자주 가질 게 아니라 제도를 통해, 법령을 통해 바꿔야 한다.
인권변호사로 정치에 오래 몸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사정에 대해 속속들이 깊이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최저임금의 긍정효과가 90%라느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한국이라느니 이런 가짜뉴스를 가짜인 줄도 모르고 발언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대통령을 직접 탓하기보다는 이런 원고를 써준 참모들에게 주로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첩경은 경제를 이념으로 머리로만 생각하는 참모들이 아니라 사업다운 사업을 해봤거나 제대로 경제정책을 해본 프로페셔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실천에 옮겨 표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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