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은 항상 호기롭다. 과장이 더해져 카리스마를 만든다. 망망대해를 가르며 호연지기를 기른 뱃사람들도 오죽하랴. 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전설 몇 개를 소개한다.
선박에 레이더가 장착되지 않았던 1940년대의 이야기이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면 닻을 놓아야 한다. 닻은 배를 제자리에 고정시켜 준다. 옛날 어느 항구에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레이더가 없었기 때문에 안개가 심하면 닻을 내릴 곳을 찾기가 어렵다. 닻을 잘못 놓으면 배가 다른 배나 육지와 충돌한다. 그때 선장이 선원에게 명령했다. “징을 들고 배 앞에서 쳐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선원들을 뒤로하고 선장은 징소리를 들으며 배를 움직였다. 그러고는 “이곳에 닻을 내려라”라고 소리쳤다. 여전히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좋은 곳에 닻을 놨다”며 선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닻을 내리다니. 선원들은 걱정했다. 얼마 뒤 안개가 걷혔다. 살펴보니 그렇게 좋은 자리에 닻이 놓여 있을 수가 없었다. 선장은 징소리가 주변 육지와 섬에 반사돼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거리를 파악해 닻을 놓은 것이다. 전설의 주인공은 영국계 상선학교를 나와 최상급 선장면허까지 딴 전무후무한 한국인. 대한민국 제2대 국방부 장관 고(故) 신성모 캡틴이다.
한국인 김정남 씨의 일화도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1969년 항해 중 열린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신 그는 속이 답답했다. 그는 난간에 몸을 기댔다가 배가 요동치는 순간 떨어졌다. 이를 모른 채 배는 떠났다. 정신을 잃을 무렵 큰 거북이가 다가왔다. 가까스로 그는 거북이 위에 올라탔다. 시간이 흘러 지나가던 스웨덴 선박이 그를 발견했다. 망망대해에서 사람이 거북이 등에 타고 있다니. 그를 발견한 선장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입항한 뒤 사진을 신문사에 보냈다. ‘거북을 타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한국인’이라는 기사가 뉴욕타임스 호외에 실렸다.
교훈을 담은 전설도 있다. 16세기 말 네덜란드의 한 선장이 북극항로 개척에 나섰다. 그는 1597년 3차 원정 도중 노바야제믈랴섬의 얼음에 갇혔다. 선장과 선원들은 얼음이 녹을 때까지 수개월간 고립됐다. 17명 중 5명이 동사하거나 굶어 죽었다. 선장도 죽었다.
봄이 오자 선원들은 구조됐고 고국에 돌아왔다. 이들을 맞이한 네덜란드 국민들은 뜻밖의 사실에 놀랐다. 배에 실려 있던 화물이 그대로 보존됐던 것. 그중에는 옷가지, 음식도 있었다. 이를 꺼내 입고 먹었다면 선원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 맡긴 화물에 손대지 말라”는 선장의 명령을 선원들은 목숨을 버리며 지켰다.
이후 네덜란드 선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네덜란드는 해운 강국이 됐다. 죽은 선장이 남긴 북극 탐험기록은 1871년 발견됐다. 이 전설적인 선장의 이름은 빌럼 바렌츠다. 그가 발견한 바다는 그의 생애를 기려 ‘바렌츠해’로 명명됐다. 그의 얼굴은 유로화 동전에도 새겨졌다. 목숨보다 신용을 소중하게 여긴 520년 전 전설 앞에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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