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44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택한 한국의 마지막 교체 카드는 구자철이었다. 출전이 불발된 선수들은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이승우(21·베로나·사진)가 돌출 행동을 했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물병과 수건을 차례로 발로 걷어찼다. 그러고는 착용하고 있던 정강이 보호대를 손으로 빼 집어던졌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경기 후 이승우는 굳은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란 말만 남기고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다.
이승우는 아시안컵 조별리그 3경기에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에 불만이 생길 수는 있지만 표현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선수 투입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항명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은 팀 분위기를 해친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당초 벤투 감독의 팀 구상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였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벤투 감독에게 이승우의 발탁 가능성을 물어봤을 때 벤투 감독은 ‘그 포지션에 좋은 선수가 많아 뽑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벤투 감독은 지난해 9, 10월 A매치 기간에 이승우를 발탁해 테스트했다. 하지만 이승우가 실전에 나선 것은 코스타리카전(9월)에 교체 투입돼 10분 정도를 뛴 것이 전부다. 결국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던 이승우는 공격수 나상호의 부상 때문에 대체 선수로 아시안컵 무대를 밟았다.
극적으로 대표팀에 승선한 이승우지만 벤투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이승우를 ‘조커’로도 사용하지 않았다. 주로 측면 공격수로 나서는 이승우는 이청용 황희찬 등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은 전방에서부터의 강한 압박 수비를 강조한다. 황희찬 등 이승우의 경쟁자들은 쉼 없이 움직이면서 압박을 시도하지만 이승우는 수비력과 활동량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결승까지 올라갈 경우 앞으로 4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향후 이승우의 경기 투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렸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16강부터는 우승 후보급 상대들과 만나기 때문에 (이승우의) 출전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 아니면 투입이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경기 막판까지 우리가 앞서지 못하면 공격적 교체 카드가 필요하다. 이때는 상대 밀집 수비를 뚫어내는 이승우의 개인기가 필요할 수 있다. 이승우는 묵묵히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팀 고참들은 이번 논란으로 팀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성용(30)은 “승우의 행동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아직 어린 선수니까…. 승우를 잘 타이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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